현재를 산다는 것의 의미
현재에 산다는 것은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반복해서 되뇌이는 것을 멈추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실 멈추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알아차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미래를 걱정하는 생각이 자동으로 떠오르더라도 거기에 생각이 휩쓸려 들어가지 말고 알아차리고, 다시 현재 순간으로 돌아오는 것이 현재에 머무르는 것이다. 과거의 후회와 아쉬움, 미래에 대한 걱정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순간 느끼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을 받아들이되, 다르게 바라 볼 수도 있다는 개방된 마음을 가지면 삶이 자유로워진다.
그런데 조 디스펜자라는 양반이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 뇌가 얼마나 게으른지 아느냐는 것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하는 생각이 어제와 똑같다. 화장실에서도 어제와 같은 걱정을 하고, 출근길에서도 어제와 같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지어 점심 메뉴를 고민할 때도 어제와 같은 패턴으로 고민한다. 이게 바로 '자동 조종 모드'다. 뇌가 에너지를 아끼려고 과거의 프로그램을 계속 재생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상태에서는 진짜 현재를 경험할 수가 없다는 거다. 오늘이 어제의 복사본이 되어버린다. 마치 같은 영화를 매일 보는 것과 같다. 처음엔 재미있을지 몰라도 100번째 보는 영화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디팩 초프라는 이런 상황을 더 드라마틱하게 표현한다. 우리가 '죽은 과거의 좀비'가 되어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겉보기엔 살아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기억과 감정에 의해 조종당하는 로봇이다. 무서운 건 본인은 그걸 모른다는 거다. 좀비 영화에서 좀비들이 자신이 좀비인 줄 모르는 것처럼.
그럼 어떻게 이 좀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간단하다. 뇌를 속이면 된다. 조 디스펜자가 말하는 '새로운 인격'을 연기하는 거다. 평소에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면 오늘 하루만 천사처럼 행동해보자. 평소에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면 오늘만 낙천주의자 코스프레를 해보자.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뇌는 금방 속아넘어간다. 생각보다 순진하다.
더 재미있는 건, 이렇게 연기를 하다 보면 진짜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거다. 뇌가 "어? 이 사람이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하고 착각하기 시작한다. 마치 가짜 명품을 진짜라고 믿고 사는 사람처럼. 어차피 구분 못하면 가짜도 진짜 아닌가.
디팩 초프라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 자체가 사실은 환상이라는 거다. 과거의 기억들이 모여서 만든 허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나'를 창조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마치 게임에서 캐릭터를 새로 만드는 것처럼.
물론 이런 얘기를 들으면 "그래서 구체적으로 뭘 하라는 거야?"라고 묻고 싶을 것이다.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지금 당장 코로 숨을 들이마셔보라. 그리고 "아,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구나"라고 생각해보라. 이게 현재다. 별거 아니지 않나.
하지만 이 '별거 아닌 것'을 제대로 해보면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갑자기 주변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리고, 공기의 온도가 느껴지고, 지금까지 놓쳤던 작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HD에서 4K로 화질이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
중요한 건 이걸 '수행'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거다. 그러면 또 다른 할 일이 되어버린다. "아 오늘도 현재에 살기 연습을 해야 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건 미래에 대한 계획이 되어버린다. 아이러니하지 않나.
그냥 놀이라고 생각하자. "오늘은 과연 몇 번이나 현재 순간을 놓칠까?"라는 게임을 하는 거다. 놓치는 것도 재미있고, 잡는 것도 재미있다. 어차피 정답은 없다.
결국 현재에 산다는 건 뭔가 거창한 깨달음을 얻는 게 아니다. 그냥 "아, 내가 지금 여기 있구나"라는 당연한 사실을 자주 자주 기억해내는 것이다. 마치 깜빡한 약을 먹는 것처럼. 별일 아니지만 꽤 중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