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점점 나아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일까.
한때 나는 믿었다.
인간 사회는 진보하고 있고, 기술은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며,
언젠가는 모두가 평등한 출발선에 설 수 있으리라고.
이제는 안다.
그 모든 말이 위로를 가장한 확률 게임의 언어였다는 걸.
사고와 질병, 성취와 성공, 심지어 사랑마저도
확률 분포 위에서 춤추는 현실 속에서,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은 점점 허망해진다.
어떤 이는 최선을 다해도 벼랑 끝에 몰리고,
어떤 이는 가볍게 노력해도 뜻밖의 기회를 낚는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그리고 그 불공평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과거보다 우리는 더 안전하고, 더 오래 살며, 더 많은 정보를 누린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극단의 불행은 사라지지 않았다.
전보다 많은 이들이 우울을 호소하고,
기술은 더 발전했지만 사람들은 더 자주 외롭고 불안해진다.
진보는 모두를 구원하지 않았다.
그건 일부에게 집중된 확률의 호사였고,
나머지에게는 더 깊어진 박탈감과 비교의 늪을 남겼다.
“그래도 예전보다 낫잖아”라고 말하는 목소리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은 늘 평균값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삶은 평균이 아니라 표본으로 살아지는 것이고,
그 표본 하나하나의 삶에는 극단의 고통과 예외적인 기쁨이 공존한다.
우리는 지금도 운에 따라, 조건에 따라,
어느 곡선의 끝에 서 있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진보는, 사실 이야기다.
인간이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가능성과 희망의 이야기.
그러나 그 이야기가 모든 이의 현실을 대변할 순 없다.
진보는 일부를 구원하지만, 모두를 구하진 않는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 진보의 이름으로 조용히 탈락한다.
그래서 나는 묻고 싶다.
진보는 누구를 구원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곡선 밖에 선 사람들을 정말 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