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문자에 눈물이 났다

by 플로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나는 아버지와 직접 통화하지 않는다.

항상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께 내가 할 얘기를 전달했다.

생각해 보니 학창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했다가 무뚝뚝하고 때때로 꾸중으로 되돌아오는 그의 잦은 훈계 말씀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렇다. 어머니는 늘 나의 대변자였다. 그런 나의 대변자이신 엄마가 지난주 입원을 하셨다.

입원 준비 단계에서부터 아버지는 나와 여동생 둘이 있는 단톡방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셨다.

우리 남매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미 잘 읽고 있는 자녀들이기에 서로 할 일들을 분담했다.

입원 수속, 수술이 다 끝나고 재활하시는 동안 아버지는 홀로 기거하시며 엄마가 미리 준비해 둔 음식과 여동생이 챙긴 국거리 등으로 며칠을 잘 보내고 계셨다.



그러던 이번 주 월요일, 아버지로부터 장문의 카톡이 도착했다.

순간 글을 전부 한눈에 담았더니 바나나 껍질이며 냉장고 뒤로 어쩌고 저쩌고 적혀 있었다.

나는 시력과 시야가 급격히 약해지고 좁아지는 아버지의 시력 장애로 사고라도 난 것일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침착하게 다시 심호흡을 하고 문자 내용을 읽어보았다.

내용인즉슨 김치 냉장고 위에 얹힌 바나나가 냉장고 뒤로 넘어갔는데 당신 손으로 못 꺼내어 바나나가 썩을까 봐 걱정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게 퇴근하고 들러 좀 꺼내 주고 가 달라는 말씀이었다.

이 얘기를 아내에게 하고 퇴근하고 부모님 댁으로 바로 가야겠다고 했더니 아내가 회사 근처에서 추어탕 국을 포장해서 가져다 드리라고 했다.

아마 국거리가 떨어질 때가 다 되었을 거라고, 순전히 아내의 직감이었다.

회사에서 퇴근할 무렵 내가 여차저차하여 아버지 댁에 간다고 하니 회사 내방 고객에게 줄 시골풍 벽걸이 달력을 챙겨가라고 나이 지긋한 여 과장님이 챙겨주셨다.




집 근처에 가서 아버지께 "곧 도착합니다"라며 건넨 짧은 통화.

중국집에서 오롯이 우리 둘만이 함께 먹는 짜장면, 이 장면은 매우 어색한 기분을 내게 안겼다.

어머니가 곁에 없이 우리 집에 남자 둘만 밥 먹은 때는 내 평생의 기억으론 다섯 손가락을 꼽으면 충분하다.

밥을 먹고 다시 눈이 어두우신 아버지를 조심조심 모시고 집으로 가서 후레쉬를 들고 냉장고 뒤에 숨은 시커멓게 변한 바나나 2개를 찾아냈다.

나는 창고에 가서 집게를 가지고 와서 채 5분도 안 되어 바나나를 꺼내어 방바닥에 툭 던져 놓았다.

아버지는 "내가 집게를 사용할 생각을 못 했네"라며 숙제를 막 끝낸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가져온 추어탕이며 달력이며 내려놓고 아버지를 마치 내 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오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집으로 되돌아왔다.




이튿날 아침 근무 시간에 아버지로부터 한 통의 문자가 왔다.


"달력 펼쳐 보니 커서 좋으네. 여러 가지 행사와 약속 같은 것도 적기 좋고 해서 걸어두었다.

추어탕도 먹어봤는데 맛있더라."


퉁명스럽고 무뚝뚝한 아버지로선 최대한의 애정을 담아 고맙다는 표현을 한 것임을 알자 살짝 눈물이 고였다.

어쩌면 엄마가 입원하시고부터 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장남의 관심이 그리웠던 것이 아닐까.

어머니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하루를 혼자서 보내려니 외롭고 힘들다는 마음을 내가 좀 알아봐 달라는 듯 아버지의 짧은 두 문장이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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