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용으로 아빠를 지우고 싶었다

말하지 못한 상처가 그림이 되었다

by 플로쌤

(일러두기) 다음 글을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입니다


아이에게 크레용은 단지 색을 입히는 도구가 아니다. 감정을 눌러 담는 도구다. 그리고 때로는 고백보다 더 무거운 고발이 된다.

하얀 도화지 앞에서 퐁이는 한참을 망설였다. 가족 그림을 그리라는 말에, 벌써부터 그의 마음은 눅눅해졌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 아빠, 강아지, 해님까지 함께 웃고 있었지만, 퐁이는 크레용을 들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먼저 엄마를 그렸다. 회색 스웨터를 입은 모습이었다. 웃는 얼굴을 그리려다 말았다. 웃음은 요즘 보기 드문 것이었기 때문이다. 퐁이는 엄마 옆에 자기 자신을 그렸다. 실제로도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밥을 먹을 때, 빨래를 널 때, 엄마가 텔레비전 앞에서 깊은숨을 쉴 때. ‘엄마 곁’은 퐁이의 지정석이었다.

이제,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았다. 아빠다.

검은 크레용을 들었다 놨다. 아빠 얼굴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소파에 누운 뒷모습만 기억났다. 아빠 얼굴은 늘 텔레비전을 향해 있었고, 퐁이를 향한 얼굴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퐁이는 나를 도화지 구석에 작게 그렸다. 소파에 누워 있는 모습으로.


“아빠, 같이 놀자.”


TV는 소리를 냈고, 나는 침묵했다. 드라마에서 뉴스로, 뉴스에서 예능으로, 예능에서 다시 드라마로. 나는 리모컨으로 세계를 바꾸었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세계인 퐁이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못했다.


“레고 맞춰줘.”


내가 건넨 말은 “5분만.”이었다. 대화가 아니라, 딜이었다. 퐁이는 더 요구할 줄 몰라 이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토요일 아침, 나는 양복을 입었다. 퐁이는 눈을 비비며 물었다.


“아빠, 어디 가?”


“일 보러.”


“토요일인데?”


“토요일도 일해야지.”


그 말은 한때 나에게 변명이었고, 지금은 나에게 죄책감이 되었다.


그 ‘일’이란 건 사실 다단계 사업이었다. 정장을 입고 나갔지만, 속은 늘 불안했다. 제품보단 사람을 모집해야 했고, 물건보다 명함을 더 많이 돌렸다. 누구 하나 사지 않은 건강식품 박스들이 베란다에 쌓여 있던 시절이었다.


퐁이는 여섯 살 무렵, 내게 안겨 다단계 교육장에 따라간 적이 있다. 그날의 기억은 내가 아니라, 아이에게 상처로 남았다. 환하게 웃는 강사의 얼굴과 쩌렁쩌렁 울리는 마이크, 손뼉을 강요받던 아이의 작은 손. 돌아오는 길, 퐁이는 내 품에서 말이 없었다. 나는 그 정적을 '피곤해서 그렇겠지'라고 넘겼지만, 아이는 그날 이후 ‘토요일의 아빠’를 싫어하게 되었다.


그날도 아내는 물었다. “언제 와?”


나는 짧게 말했다. “늦어. 기다리지 마. 내일 올 수도 있어.”


공원 벤치에 앉아 퐁이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차가웠다. 엄마의 시선은 그네를 밀어주는 다른 집 아빠를 따라 움직였다.


“엄마도 아빠 기다려?”


퐁이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월요일, 퐁이의 그림이 선생님의 눈에 들어갔다. 가족은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떨어져 있었다. 소파에 누운 내가 구석에 있었고, 그 옆엔 어린 손글씨로 쓰인 문장이 있었다.


“죽이고 싶다.”


선생님은 퐁이를 불렀다. 퐁이는 고개를 숙였다.


“아빠가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 말은 방금 지어낸 게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서 차곡차곡 쌓여 있던 문장이었다.


선생님은 말했다.


“아빠도 힘드실 거야. 어른들도 힘들 때가 있단다.”


하지만 퐁이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 어른의 힘듦은 아이에게 전가되는가. 왜 어른의 무게는 아이의 어깨로 옮겨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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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