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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DITOR Jul 25. 2017

관찰과 응시의 글쓰기로 인문학과 삶을 잇는 휴머니스트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분노사회>의 저자 정지우

심호흡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는 여행에 관한 책이지만 기존 여행서의 범주 안에 속하기를 거부한다. 여행지의 맛집, 숙소, 루트에 대한 정보를 주는 대신 여행을 인문학적으로 성찰하고 분석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굳이 분류하자면 여행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한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과 비슷한 결이라고나 할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찍어놓은 듯한 문장에 몇 번이고 이끌렸다. 나는 왜 여행을 떠나는가, 여행은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떠남과 돌아옴 사이의 나는 어떻게 달라져 있는가, 라는 질문과 맞닿았기 때문. 마침 저자의 전작인 <사람은 왜 서로 도울까>라는 책을 당시 팀의 선배로부터 추천받은 터라 읽은 직후였다. 저자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인터뷰 승낙 답신을 받았다. 2015년이 며칠 남지 않은 12월의 마지막 주, 목동의 한 카페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가 오갔고, 맑은 진지함과 차분한 웃음이 중간중간 뒤섞였다. 훗날 또 볼 수 있기를 기약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정지우 작가와 나눈 이야기 혹은 들숨과 날숨. 


들숨과 날숨의 기록

HYE강(이하 생략): 꽤 여러 권의 책을 쓰셨는데요. 그에 비해 활동을 많이 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이때만 해도 정지우 작가는 나이를 공개하지 않고 활동을 했다)

정지우(이하 생략): 첫 책을 26살에 썼어요. 흔히 2030이 쓴 책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지 않나요. 특히 인문학이라는 분야는 어느 정도 양적인 공부를 쌓았느냐가 중요한데, 어린애가 글을 썼다고 하면 일단 편견을 갖고 보는 분위기가 있어요. <청춘 인문학>은 정말 청춘에 대한 이야기라 2030이 썼다고 해도 큰 문제가 없을 수 있는데, <삶으로부터의 혁명>부터는 저 나름대로 각 잡고 담론을 써보겠다는 마음을 갖고 시작했거든요. 그게 되려면 30대든 40대든 50대든, 같은 담론의 장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인지 저는 20대가 쓴 20대의 책이라는 규정 자체가 처음부터 싫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굳이 나이를 먼저 공개하지 않기도 했어요.


책을 쓰겠다는 목표는 언제 정하신 건가요?

저는 고등학교는 부산에서 나왔고 대학 때부터 서울에서 생활했어요. 대학을 다니면서도 휴학을 하고 책 보고 글 쓰는 생활을 자주 했어요. 원래는 소설을 썼었어요. 소설가를 꿈꾸며 단편 소설을 여러 개 써보고 장편도 썼었죠. 우리나라에서 소설가가 되려면 등단이라는 관문이 있는데, 그게 언제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잖아요.(웃음) 점점 학년은 올라가지, 휴학도 했지, 시간은 흘러가는데 말이죠.


당시 등단을 한 젊은 소설가들을 어쩌다 좀 알게 됐는데 소위 좀 잘 나간다고 하는 소설가라고 해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어요. 30대를 넘어가면서 인정은 조금씩 받는데 돈이 없으니까, 자기가 인정받는 것만큼 생활이 안 따라주니까. 어떻게 보면 돈에 더 집착하기도 하고요. 그런 면들을 곁에서 보면서, 이 길을 쭉 따라가면서 등단을 하고 장편 소설을 발표하는 수순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저는 소설 쓰기는 멈추고 다른 책을 쓰기 시작했죠. '한 권이라도 완성하면 내 줄 출판사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요. 


소설을 쓰면서 철학 공부도 많이 하다 보니 나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그렇게 다짜고짜 계속 쓰게 되었어요. 1년에 에세이나 일기만으로도 노트 20권은 썼고, 소설도 별도로 10편씩은 썼으니 쓰기는 진짜 많이 썼죠. (에디터 주: 정지우 작가가 대학생 때 쓴 장편 소설은 얼마 전 당선이 되었고, 출간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청춘, 애니메이션, 여행 등 사회의 키워드를 인문학과 연결시키는 형태의 책을 쭉 내셨어요.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는 소개를 봤는데, 어떤 공부 어떻게 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저는 동아리나 학회 활동, 세미나 활동 이런 건 거의 안 했어요. 일반적인 대학생들이 가는 루트가 정해져 있잖아요. 1학년 때는 좀 놀다가 2학년 때부터 학점 관리하고 3학년 때는 토익, 대외활동으로 점수를 쌓아 4학년 때 원서를 넣는. 그 루트 속에 있으면 저랑 안 맞으니까 오히려 불안하더라고요. 그래서 학점 잘 주는 수업 같이 듣기, 이런 건 안 했어요. 1학년 때부터 제가 듣고 싶은 수업 위주로 골라 들었어요. 청강도 많이 하고. 휴학하고 아예 철학아카데미에 다니기도 했고요. 제가 하고 싶은 방식을 추구하니까 동기들과 생활 패턴은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가끔 같이 밥을 먹는 정도? 혼자 생활한 시간이 많았습니다.


얘기를 들으니 고등학생 시절이 궁금해졌어요. 자신이 가진 주관이 뚜렷하지 않고서야 20살이 되어 대학에 갔을 때 이런 선택을 하는 게 흔한 건 아니니까요.

재미로 소설을 처음 쓴 건 중학생 때였는데 그때는 가끔씩 썼고, 고등학생이 된 후 소설 쓰기에 재미를 붙였어요. 소설 읽는 건 별로 안 좋아하고 쓰기를 좋아했죠. 상상하기를 좋아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읽는 건 오히려 대학교에 와서 계속 읽어대기 시작했고요. 고등학생 때 환상 소설, 연애 소설도 써봤어요. 야자가 끝나면 집에 와서 새벽 1시부터 2시까지 공부하다가 다시 4시까지 소설을 쓴 후 두 시간을 자고 학교 가서 또 잤어요. 그 패턴을 거의 3년 동안 했는데, 그러다 보니 약간 독립적인 영역이 생긴 게 아닐까 싶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영역을 갖고 있었던 거니까.


대단한데요. 그런 패턴을 3년이나 하다니.

대단... 한가요?(웃음) 어쨌든 그 습관이 있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는 영역에 대한 고집이 생겼어요. 경험 때문인지 혼자서 무언가 하는 게 두렵지는 않았고요. 다수에 반드시 속해야 한다는 압박도 없는 편이었네요. 사실 책은 수능 공부, 내신 공부 때문에 고등학생 때는 잘 읽지 않았고, 대학에 와서 정말 열심히 읽었어요.

 

독서에 대한 물꼬를 터준 책이라든가 영향을 준 사람이 있나요?

처음에는 유행하는 베스트셀러를 읽었어요. 파울로 코엘료라던가. 되게 재미있더라고요. 지금은 그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의 글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것 또한 자기비판이죠. 또 무라카미 하루키, 요시모토 바나나 등이 쓴 소설을 읽다가 제대로 문학에 진입하게 해 준 책은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였어요. 그때부터 고전을 엄청 읽어댔죠.


요새 많이 홍보하는 헤세 전시회도 혹시 가보셨나요?

전 그런 팬심은 또 없어요.(웃음) 그냥 그의 글, 문학이 좋은 거지, 일기라든가 그림까지 관심이 가진 않아요. 책도 제시하는 목록 같은 건 따라 읽지 않고 그냥 제가 읽고 싶은 걸 읽었어요. 저도 처음에는 <드래곤 라자> 같은 판타지 소설 많이 봤어요. 그 후에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도 봤고요. <해리포터>는 중고등학생 때 몇 번을 읽었는지 몰라요. 처음부터 <파우스트>에 손을 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애니메이션 인문학 얘기를 해보자면, 전 <원피스> 되게 좋아하거든요. 이야기나 플롯, 캐릭터 자체를 재밌게 봤는데 이걸 인문학이랑 연결하는 면이 흥미로웠어요. 흥미와 공부가 따로 가는 게 아니라 두 가지를 충분히 엮을 수가 있구나, 작가님 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처음부터 그랬어요. 제가 재미있는 거, 제가 쓰고 싶은 거, 제가 쓸 수 있는 거, 저랑 가까운 거를 쓰려고 했어요. 모두가 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읽을 사람은 읽고 안 읽을 사람은 안 읽으면 그만이니까. 제 첫 책이 <청춘 인문학>인데, 당시 청춘 담론이 막 나오던 시기였고 저 역시 청춘에 관한 각종 책은 거의 읽어봤어요.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부터 고미숙 씨가 말하는 청춘에 관한 이야기도요. 그런데 뭔가 저랑은 맞지 않더라고요. 제가 바로 그 청춘인데, 기성세대가 쓴 청춘 책들이 묘하게 안 맞는 거예요. 그래서 제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쓱 시작했어요. 청춘이 제가, 청춘에 대하여 쓰는.


이번에 나온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랑도 비슷하네요. 쓰고 나서는 좀 후련하신가요?

네, 그러려고 쓰는 거죠. 후련하려고.


'인문학'이라는 단어에 넓은 범주가 있기에 딱 정의할 수는 없지만, 작가님 스스로가 쓰고자 하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문학은 어떤 걸까요? 

요즘 인문학 열풍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그에 따른 비판도 많잖아요. 대중 인문학을 '인문학 팔이'라고도 하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인문학이 죽어서는 안 된다, 인문학이 살아나야 한다'고도하죠. 하지만 가짜 인문학은 안 된다는 조건이 붙고요. 그런데 그 비판이 제게 해당된다는 생각은 안 해요. 인문학이 우리의 삶이나 우리가 속한 현실을 더 옹호하고 강화하는 데 쓰인다면, 인문학이 대중이나 사회의 분위기에 편승한 거라고 봐요. 예를 들면 심리학을 잘 요리해서 청춘을 회사에 더 적응시키게 만든다든가, 소위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에 더 잘 적응하는 힘을 길러준다든가, 아니면 이 세상을 더 긍정하게 만들거나 자기 삶을 바꾸기보다는 지금에 순응하게 만드는 것 등이죠. 인문학의 이름을 빌린 이런 립서비스들은 편승이 맞는 것 같아요.


인생이나 생활이나 삶과 가까운 소재를 택하는 건 상관이 없다고 봐요. 에바 일루즈나 지그문트 바우만, 지젝 같은 학자들도 소재는 트위터, 라디오, 티브이, 광고, 코카콜라에서 가져오죠. 그 소재를 갖고 인문학이 대중과 합쳐졌다고 비판하는 것은 맞지 않아 보여요. 중요한 건 그걸 어떤 식으로 풀어내고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하느냐겠죠. 결과적으로 우리 삶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비판적으로, 자기반성 혹은 세상에 대한 반성을 불러온다면 그건 오히려 가장 세련된 인문학이라고 보고요.


방향성을 봐야 한다는 거네요.

인문학은 항상 그랬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쇼펜하우어 역시 당대의 문제를 갖고 고민했던 사람들이잖아요. 우리가 이 철학자들을 이해하려면 그 시대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그런데 지금 아카데믹한 곳에서는 마치 그 옛날 철학과 인문학만이 진짜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곤 해요. 지금은 또 지금 시대에 맞게 이야기를 하는 게 인문학 아닐까요? 예를 들어 강신주 같은 사람의 행보 자체가 문제일 수는 없는 거죠. 그 사람의 논법이나 주장, 연구의 경중에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어도요. 아직도 우리나라 학계 전통에서 나오는 논문을 보면 아무도 안 읽는 논문을 내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상아탑이 고고한 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건 비판받아야 할 점이라고 봐요. 현대 사회에 맞게 그 시도를 읽을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의 역사나 철학이 그 이전 철학자들의 주석 달기 역할에 머무는 건 경계해야죠.


우리나라도 거리로 나선 인문학자들이 깊이까지 더해지면 좋겠어요.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쓰신 노명우 선생님 같은 분들이 그런 깊이까지도 겸비해 가시는 것 같아요. 그런 관점에서 인문학 작가로서의 제 역할도 분명 있다고 봐요. 물론 얼마나 깊은 사유가 있고 타당한 논리를 펴는지는 다른 문제로 다뤄야죠.


이번 책의 부제에도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있어요. '진짜 여행에 대한 인문학의 생각'인데요.

이번 책은 객관적, 비판적, 자기반성을 가능하게 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다닌 여행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되었고, 그 여행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반성도 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여행을 간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비판적으로 보게 됐거든요.


책에 수록한 사진들도 직접 여행을 다니며 찍으셨다고 들었어요. 여행 사진 찍을 때 염두에 두는 점이 있다면요?

개인적인 사진철학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저는 그곳의 사람들이 사진에 담기는 걸 좋아해요. 그 장소 특유의 자연스러움이 느껴지거든요. 분위기를 전달하기에도 좋고요. 단, 초상권 문제가 있으니 얼굴이 정면에서 나오지 않도록 신경을 씁니다.(웃음) 


이번 책은 표지부터 내지까지 전부 직접 찍은 사진이에요. 80% 이상이 유럽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죠. 제가 넘긴 수많은 사진 중에 디자이너가 사진을 골랐어요. 그 여행들을 다니면서 메모한 것을 정리해 이 책의 초고가 나온 거고요.




To. Chance
기회와 가능성은 좋아하는 단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 가지는 연애와 여행이 아닐까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중


여행을 떠나기 전과 떠난 후로 나눌 때 삶에 바뀐 부분이 있을까요?

단 한 번의 여행으로 많은 것이 바뀔 수는 없다고 봐요. 우리 인생도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서 한 순간에 확 바뀌지 않잖아요. 대신 하루하루를 구성하는 사소한 선택들, 그 선택을 하기 위한 생각들, 그에 따른 경험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과거와는 다른 현재의 모습이 나와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 측면에서 ‘시간의 축적’이 참 중요한 것 같네요. 제 생각에는 신앙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신을 만났다고 말하면서 하루아침에 무언가 다 달라진다는 걸 저는 믿지 않아요.

 

책에는 배낭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엿보고 꿈꾸는 대목이 나오죠. 작가님이 생각하는 본인의 다른 삶은 어떤 걸까요?

다른 삶을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한데 모두가 똑같은 방법을 택할 수는 없어요. 누군가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다른 누군가는 안에서 밖으로 걸어나가야 하죠. 그렇게 느슨한 공동체를 이루며 선순환으로 사는 모습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요. 개인적으로는 기성 제도 속에 편입돼 그대로 따라가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봐요. 그렇게 살아서는 행복할 수도 없고 원하는 걸 이루기도 너무 힘든 시대죠. 그렇다고 기성 제도를 다 걷어차고 산속에 들어가서 살 것이냐 물으면, 그것도 아니고요.


저는 '자신을 재정립할 수 있는 힘을 자유'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기성세대를 다 몰아내는 게 자유가 아니에요. 기성 제도에 있는 자유를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변형시킬지를 고민해야 해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런 얘기는 자기계발서에도 나와요. 예를 들어 회사를 다니더라도 두 시간 일찍 일어나서 자기 관심사와 꿈에 투자하라 등의 얘기죠. 하지만 자기계발서에서 하는 이야기는 회사를 다니면서 자투리 시간을 잘 써서 더 좋은 데로 이직해라는 메시지예요. 결국 기성 제도 안에서 움직여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뿐이에요.


그런데 기성 제도 안에 있더라도 뭔가 다른 시간을 보낸다거나 다른 마인드를 가지고 산다면 어떨까요. 기성 제도에 편입되지 않는 자기만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해 나간다면, 나중에는 그 삶 자체가 고유해질 거라고 봐요. 현실적으로도 그런 사람들이 다른 경제까지 형성할 수 있어요. 생산과 소비를 같이 하는 영역을 넓혀 나가는 거죠. 그냥 휩쓸려 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도, 사회도 바꿀 수 없어요. 앨빈 토플러가 말한 생산-소비자의 역할, 새로운 생산-소비의 영역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렇다면 작가님이 생각하는 생산-소비의 영역은 어떤 건가요?

저 역시 기성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지만 바깥에서 또 다른 영역을 만들어 나간다고 늘 생각해요. 책을 쓰는 것도 그렇고 방송(팟캐스트)을 하는 것도 그렇고요. 방송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순한 취미 이상으로 의미를 두고 있기도 해요. 방송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사람을 만난다는 거예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연대 아닌 연대, 느슨한 연대를 만들고 다양한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과정 아닐까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저 역시도 느슨한 공동체를 만들고 싶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신다면요.

예를 들어 잡지를 만든다 하면,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글을 쓸 기회를 줄 수도 있고, 방송에 나와서 그런 기회를 만들 수도 있겠지요. 그건 제가 일방적으로 주는 건 아니고 상대편에서는 콘텐츠를 주는 방식이 되겠죠? 일방적이 아닌 상호적인, 서로 돕는 관계를 만들며 살고 싶어요. 그러려면 확실히 네트워크가 절실해요. 단순히 사회 인맥을 말하는 게 아니라 뜻을 공유하는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지금은 그 네트워크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봐요. 사람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예전에는 혼자 책만 썼는데, 그러다 보면 독단에 빠지기도 쉬운 것 같아요. 설령 그렇게 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건 별 의미가 없다고 보고요. 결국에는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과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 헬조선, 끔찍한 한국 사회에서 고립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좋은 뜻을 갖고 있어도 그걸 어떻게 펼쳐야 할지 몰라서 고립된 사람들... 더 이상 각개전투로는 세상이 바뀔 수 없어요. 그렇다면 각자의 삶도 바뀌지 않는 건 당연하죠.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도 호기심이 생기네요.(웃음) 가깝게 2016년의 계획을 먼저 들려주신다면요? 

이건 '옳다'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고요, 개인적으로 갖는 태도인데요. '절대 한 군데 올인하지 않아'요. 올인하면 제가 못 견디기 때문에. 해야 할 건 하면서 또 챙길 건 챙겨야 하는데, 지금은 약간 올인했다는 생각이.(웃음)


요새 흥미롭게 본 책이나 관심사가 있을까요?

저도 관심사가 많이 바뀌었어요. 원래 하나에 꽂히면 파고드는 성격이라 처음에는 소설만 미친 듯이 보다가 비교적 최근에는 사회학에 관한 책들에 빠졌었어요. 거기서 살짝 관심이 넘어갔던 게 진화심리학 책이었고요. 지금은 약간 공백기가 생겨서 팟캐스트 준비와 문학 책들을 읽고 있어요.


현재 관심사는 종교예요. 예수와 관련된 책들이 쏟아져 나와서 관련된 책들을 두루 찾아보고 있어요. 사실 지금까지는 철학, 정신분석학, 문학 공부를 했는데 별로 존경할만한 인물을 찾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성격도 괴팍한 사람이 많고. 진짜 존경할만한 사람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니 종교인 쪽에 있더라고요. 현대 인물 중에는 프란체스코 교황을 존경해요. 오바마 대통령(지금은 전 대통령)도 그렇고요. 종교가 인간에게 존경할만한 점을 제시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들이 왜 존경을 받는지, 그들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알고 나서 다른 공부든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이에요. 그런데 종교책은 읽기 싫고 이상한 책도 많더군요.


제일 좋은 책은 성서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예수의 생애라든가 비교종교학자들이 쓴 책이 끌려요. 철학자들이 쓴 예수와 붓다 이야기가 그렇고, 오강남 교수가 번역한 작자 미상의 <기도>라는 책이 참 좋았어요.


신간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 앞으로 어떤 책을 쓰고 싶으신지요.

인생이 참 계획대로 가지 않아요.(웃음) 여행 책도 계획했던 건 아니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메모를 했는데 그게 책이 되고 선정이 되었어요. 제 계획으로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책을 쓰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왠지 아닐 거 같네요.


쓰고 싶은 책은 크게 세 가지예요. 하나는 고통에 대한 책. 현대 한국 사회가 어떻게 고통을 팔아먹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다른 하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 사랑을 정리해보고 싶네요. 그런데 사랑에 대한 책은 이미 많아서 고유하고 독특한 책을 쓸 수 있을진 잘 모르겠어요. 마지막은 종교에 대한 에세이예요. 이걸 쓰려면 제가 종교에 대해 좀 알아야 하니까 지금 관심을 갖고 꾸준히 작업하는 게 필요해요. 지성을 포기하지 않고 영성으로 가는 길, 신을 믿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 기복신앙과 진짜 신앙이 뭐가 다른지 등에 대해 쓰고 싶어요. 저 나름대로 가져온 삶에 대한 믿음이나 신앙적인 태도, 그런 지점을 잘 파고들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뼈가 있는 책'(정 작가가 예전에 진행하던 팟캐스트. 지금은 '인문학적 순간'이라는 팟캐스트 진행 중) 얘기도 조금 들려주세요. 

팟캐스트를 1년 3개월 정도 했어요. 게스트 몇 명 빼고는 개인적으로 알던 친구들과 방송을 시작했죠. 유명인들을 데리고 오면 중심이 또 거기로 가기도 하고요. 방송 안에 있는 테마들을 간단하게만 이야기를 나누고 방송을 시작해요. 제가 이 방송으로 돈벌이를 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금 수준에서 유지할 생각이고요. 개인적으로 문학 방송을 선호하지는 않아요. 문학 방송은 책을 읽고 들어야 하고,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좀 싫더라고요. 굳이 선호를 따지자면 책을 통해서 사회나 교육 등 어떤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책 자체에 완전히 집중하기보다는 책을 곁들여 삶과 사회를 같이 이야기하고 싶거든요.





# editor's comment

원래 속한 시·공간을 떠나 다른 삶의 가능성을 맛보는 일, 자신을 재정립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 돌아와 현실과 이상의 균형점을 찾는 일. 이러한 '여행의 의미'는 곧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잠시 쉼표를 찍는 데 있지 않을까,라고 나는 기사에 썼었다. 그리고 반년 정도가 지난 2016년 여름, 그가 진행하던 팟캐스트에 초대를 받았다. 이미 한 번 방송에 나온 경험이 있는 S편집자님도 함께 만나 <코즈모폴리터니즘과 종교>라는 책을 통해 종교와 신앙, 사회를 바라보았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강남순 교수님은 후에 인터뷰이로 만나게 되었는데, 이런 걸 보면 참 우연인 게 없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후에 다시 다루겠지만 <코즈모폴리터니즘과 종교>는 2016년 내가 읽은 책 중 손에 꼽게 좋았던 책이다. 나의 개인적인 질문들과 아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책이었기 때문이겠지만. 그런 책을 만나게 해준 데다 오들오들 떨면서도 하고 싶던 이야기를 해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경험이 인터뷰를 정리하며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리고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에서 내가 좋아하는 문장 하나와 그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정지우의 인문학적 순간'도 함께 소개하고 싶다.


결국 여행은 돌아와서 우리가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그 훌륭한 돌아옴을 위해 여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성찰해야 한다. 우리의 삶에는 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대다수의 인생은 그저 환경에 따라, 살아온 대로, 남들 살아가는 대로 흘러가며 현실을 강요받는 방식으로 고착화된다. 여행이 만약 삶을 바꿀 수 있는 아주 적은 가능성이라도 품고 있다면, 우리가 여행을 사랑하는 한, 그 여행의 가능성에 매달려 볼 수 있다. 나는 여전히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은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 <당신의 여행에게 묻습니다> 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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