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며칠은 겨울 같고 또 며칠은 가을 같은, 마치 가을과 겨울이 등을 맞대고 앉은 듯한 계절이네요. J의 첫 번째 글을 읽고 ‘욕망’에 관해 이야기하던 지난 계절이 살포시 떠올랐어요.
J는 동산에 오를지 에베레스트에 오를지 정하지 못한 채 일단 모든 장비를 모으려고 달리는 게 맞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고 했죠. 당시에는 “어떤 산을 오르고 싶은지 알아야 그에 맞는 장비를 준비할 수 있다”라고 그럴싸한 말을 건넸지만, 돌이켜 보면 저도 하지 못하는 일을 쉽게 내뱉은 건 아닐까 싶어 글을 읽으면서 숨을 크게 한 번 내쉬었어요.
* 관련 글: 나의 혜디-타 (2019.11.16)
사실 욕망의 뚜렷한 정체를 밝히는 건 제게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에요. 저는 산으로 가도 좋고 바다로 가도 좋거든요. (들판에서 널브러져 있어도 좋아요. 설렁한 인간 같으니…) 다만, 목적지가 정해졌다면 ‘거기로 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동행자는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는 일이 제게는 욕망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말이 되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제 욕망을 선명하게 만들기보다는 늘 제 욕망을 궁금해하는 상태이고 싶어요.
욕망에 대해 말하자니, 비슷한 단어인 ‘열망’이 떠오르네요. J가 함께 본 콘텐츠로 꼽은 박재범(JAY PARK) 다큐멘터리, <CHOSEN1> 덕분에 저 역시 정말 오랜만에 어떤 열망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나요. AMOG를 포함해 박재범이 만든 크루의 본질이 그가 어려서부터 경험한 가치인 ‘공동체’에 있었다는 사실과 ‘함께’ 성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이 꽤 놀라웠거든요. 그 열망이 고스란히 전염되는 것 같았죠.
영상과 음악, 각본이 잘 짜인 다큐멘터리임을 감안하더라도, 대중을 향해 “쉽게 가려 한 적 없고, 사랑받을 자격을 갖추기 위해 제대로 하겠다”라고 말하는 건 웬만한 자신감이 아니고서는 힘들잖아요. 특히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그가 도전의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모습이었어요.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린다고 오는 게 아니구나 싶었달까요.
* 유튜브 프리미엄 다큐멘터리 <JAY PARK: CHOSEN1> 속 ‘일말의 희희’
“누구 하나만 잘되는 게 아니라, 저희 모두 잘되도록 노력하는 거예요. 이게 힙합과 비보잉의 정신이라 생각하는데 제가 여기에 크게 매료됐던 것 같아요.”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사람들이에요.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아티스트들요. (중략) 다 잘돼서 가족도 잘 챙겼으면 좋겠어요. 가족이 자랑스러워하고 가족들이 그 좋은 에너지를 다른 곳에도 전하면 좋겠어요.”
“이건 우리가 만든 거예요. 이게 곧 문화고, 문화가 필요로 하는 거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거고, 내가 있을 수 있는 곳, 나의 위치인 거예요. (중략)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같이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아야죠. 사람들의 존중을 얻어야죠. 돈과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해요. 그걸 얻기 위해 저도 노력하고 있어요.”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내가 가진 재능도 잘 살펴보세요. 쉽게 가려고 하지 마세요. 세상을 속일 수는 없어요. (중략) 진심으로 하지 않으면 결국 본인이 손해 볼 거예요.”
얼마나 먼 미래일지, 또 어떤 형태일진 모르지만, 요새 J와 저는 종종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하죠. 그때마다 이런 열망을 나누고, 또 한 뼘씩 그려볼 수 있다는 사실이 퍽 기쁜 요즘이에요. 가끔은 이 모든 말들이 허황된 이야기로 끝나는 건 아닐까 싶지만, 뭐, 가보지 않은 길이라는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나요. 결국 우리가 좋아하고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 우리를 행동하게 하는 메시지를 찾아내고 그것을 잘 다듬고 키워서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일 속에 ‘진짜’(aka. 찐)가 있을 테니까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과정에서 J와 제게도 각자의 ‘위치’를 발견하는 행운이 깃들기를.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영광(?)을 쵸즌원에게...)
며칠 전, 우연히 들렀던 곳에 놓여 있던 책을 펼치니 이런 글귀가 나오더군요.
‘걷기’도 태도이고 ‘요리하기’도 태도인 것이다. 어떤 사람을 말해주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반복해서, 생각해서 하다 보면 결국 하나의 태도, 삶에 임하는 태도가 되는 것이다. 땅을 밟는 것이, 길을 걸으며 들꽃을 꺾는 것이 좋은 사람은 많이 걸을 것이다. 많이 걷다 보면 걷는 것은 그가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태도요, 방법론이 된다. 자동차는 조금 덜 타고 조금 더 걷는 삶, 두 다리를 써서 생각하는 삶, 그가 말한 실수하기, 신뢰하기, 실패하기… 모두 같은 맥락이다.
- 박상미, <나의 사적인 도시>, 142p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어떻게 ‘근사하고, 즐겁게, 지속 가능하면서도, 건강하게 일할 수 있을까’ 고민하잖아요? 이 고민 속에서 움트는 말과 행동이 모이면 어떤 ‘태도’가 드러나지 않을까 싶어요. 결국 끈질기게 고민하고 겨우 내딛는 한걸음만이 우리가 일과 삶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 가르쳐줄 겁니다. 그 태도가 쌓일 때 우리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찐’에 대해 논할 수 있으려나요. 이렇게 생각하니 지난번 편지보다 1cm 정도 근사함이 올라간 기분이네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