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동료에 대하여
연말에 혜디-타와 프로젝트 리:콜렉트2019라는 회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소속 없는 우리끼리라도 2019년을 야무지게 회고하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게 꽤 일이 커져 유료 살롱도 진행했다. (프로젝트 리:콜렉트2019에 대해서는 기획 배경과 진행과정 전반에 대해 정리할 예정. 1월 내엔 쓰겠지..) 둘 다 뭐든 대충은 못하는 성격 탓에 스트레스까지 받아가며 2019년에 대해 깊고 찐-하게 회고했고, 덕분에 회고 그 자체에 대해서도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회사 동료이던 시절에 우리는 자주, 많은 것에 대해 회고했다.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에 대해서 하기도 했고, 함께 겪은 사건에 대해서 하기도 했다. 퍼블리는 회고의 방식이 다양하고 중요한 문화로 잘 자리 잡혀 있다. 늘 회고에서 무언가를 얻었고, 기록해 두었다. 덕분에 회고의 근육을 꽤 단단하게 키울 수 있었고, (최근 검사해본 태니지먼트의 강점 그래프에서도 회고 항목이 나의 강점 top 5 안에 들었다!) 일과 삶에서 유효하게 써먹을 수 있는 좋은 습관이 되었다.
상황이나 함께하는 사람에 따라 회고의 목적이 달라질 수 있는데, 나의 경우는 거의 늘 ‘더 나은 다음’을 얻기 위함이다. 실행이나 도전에 망설임이 없으면서도 또 실패는 싫어하는 (지랄 맞은) 기질 탓에 늘 다음을 확보하고 싶어 하는데 그게 의외로 회고의 습관과 꽤 궁합이 잘 맞는다. 일단 저질러보고 빡세게 회고하며(후회하며) 다음을 도모하는 방식이다. 회고는 혼자서 할 수도 있고, 낯선 이들과 할 수도 있지만 나의 경우는 ‘동료’와 함께 할 때 가장 좋았다.
나와 같은 과거를 공유하고 있고
미래를 함께 꿈꿀 수 있는 동료.
부족하고 서툰 과거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되
다음을 함께할 신뢰가 형성된 관계.
동료라는 파트너는 내가 회고하는 목적에 가장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함께 회고하고 다음을 도모하지 못하는 무소속의 일상은 내 일하는 마음을 쓸쓸하게 했다. 프리랜서의 삶에서 가장 힘든 것은 들쭉날쭉한 수입도, 파트너들의 일방적인 스케줄링도, 주말 없이 주 7일 일하는 일정도 아니었다. 과거를 함께 쌓고, 나아갈 미래를 함께 그리는 동료가 없는 외로움이 가장 컸다. 이 쓸쓸함을 혜디-타에게 토로했고, 우리는 서로 각자의 일을 하면서도 ‘동료’ 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함께 회고하고, 또 어떤 미래는 함께 그려볼 수 있는. 더 나은 다음을 우리 손으로 작게라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회사 동료에서 ‘동료’가 되었다.
우리 사이에도 좋은 동료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다. 나는 좋은 운동화를 골라 신고 전력으로 뛰는 것을 좋아한다. 잘 뛰는 크루들과 함께 매일같이 훈련하며 아름다운 바통터치를 하고 최고의 결과를 내고 싶다. 혜디-타도 물론 전력으로 뛰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함께 아름다운 바통터치를 만들어낸 경험도 있다. 하지만 혜디-타에게는 내게 없는 다른 에너지가 있다. 운동화를 신을 줄 모르는 동료에게 끈 묶는 법, 안전한 양말을 신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마음도 갖고 있다. (나는 그걸 감히 인류애라고 생각한다) 지난 수개월 동안 동료에 대해 사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린 어떤 동료와 일하고 싶은지, 어떤 동료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각자의 답을 찾아갔다.
서로의 사유의 과정을 보완해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덕분에 무려 홀로 일하면서도 동료에 대한 고민을 계속 지속할 수 있었다. 여전히 명쾌한 답은 없지만 최소한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분명해졌다. 이 원칙과 기준 덕에 이전보다 좀 덜 흔들릴 것이고, 더 담대할 것이다. 그리고 이 원칙과 기준을 세우는 과정을 함께한 혜디-타와 좋은 회고 파트너가 되겠지. 프로젝트 리:콜렉트2020에서 우린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 이 글의 표지 사진은 우리에게 머리가 쭈뼛 곤두서는 자극을 주는 E.K. Kim님의 사진. 귀한 투샷이다.
우리가 함께 본 콘텐츠 #2. <클라우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산타클로스와 루돌프에 대한 상상력을 관계의 관점으로 재해석했다.
크리스마스, 우체부와 편지, 선물, 성장이라는 내가 좋아하는 키워드가 모두 범벅되어 있던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 개인의 선한 의도가 바로 옆 동료를 넘어, 공동체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클리셰도 신파도 쏙 빼고 서술했다. 여러 쓸데없는 고민은 많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 내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을 때 보기 좋았다.
Klaus, Official Trailer, 2019
우리가 함께 본 콘텐츠 #3. <포드 v 페라리>
2019년에 혜디-타가 내게 딱 두 개의 영상 콘텐츠를 추천했는데 하나가 지난 글에서 언급한 유튜브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chosen1>, 다른 하나가 이 영화이다. 추천받은 날 바로 심야영화로 봤고, 2019년의 영화가 됐다.
역시 동료에 대한 영화인데 개인의 캐릭터에 집중하기보다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우선 가치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할 것인지에 대한 관점에서 보기 좋다. 영화 속의 환경이 이 시대의 콘텐츠 기획자들이 종종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이라 더 몰입이 되었다. 한 해동안 골몰했던 주제에 대한 나의 입장을 정리할 계기가 되었다.
FORD V FERRARI, Official Trailer,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