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타 요가를 시작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빛에 이끌리듯 자연스럽게 요가 지도자 과정에 끌렸다. 전굴도 쉽지 않았던 시절, 무슨 용기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 원장님은 나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선생님이 하고 싶으신 거예요?”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낯설고 부담스러웠다. 누군가를 가르치겠다고 하기엔 나의 실력은 초라했고, 그저 요가가 좋아 조금 더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생명을 다루거나 누군가의 인생을 좌우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가르친다’라는 말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이리라.
원장님의 선생님을 만나다.
1년 후 드디어 열린 지도자 과정에 앞서 미리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다. 설렘과 두려움이 섞인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 공간은, 주인을 닮은 듯했다. 장식 하나 없이 넓게 비워진 공간, 곳곳의 식물들, 나무를 닮은 인센스 향은 처음 만난 원장님의 스승이라는 그분의 분위기와 닮아 있었다.
그분은 내가 다니는 요가원의 원장님이 수련했고, 지도자 과정을 밟았던 곳의 선생님이었다. 처음 요가를 접하자마자 ‘나는 평생 요가와 함께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그녀는, 15년을 요가 안내자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녀의 첫인상은 잔잔하면서도 묵직했고,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어 100분 동안 진행되는 숙련자 수련 원 데이를 신청했다. 아마 미리 선생님이 되어줄 원장님을 뵙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할 수 있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받고 싶었던 것도 같다. 나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스스로가 아닌 남에게서 얻으려고 했다.
낯선 것도 잠시 수련은 힘들었다. 30분이 채 되기도 전에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고 주변에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오직 마시고 내쉬는 호흡만이 깨어있다는 증거가 되어주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무렵,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체력은 고갈되어 갔지만, 내면에 채워지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오아시스 같은 사바아사나의 시간이 찾아왔다.
“타고난 몸이 아닌데 사유님이 얼마나 애썼는지 알겠습니다”
수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게 원장님이 해주신 말이었다. 인사를 하고 나와 차 안에 앉아 출발하지도 못한 채 한참을 울었다. ‘타고난 몸이 아니다’라는 말에 대한 서운함이 아니었다. 그동안 뻣뻣하고 변화가 느리던 몸으로, 매일같이 수련을 이어왔던 내 시간이 스치듯 지나갔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원상태로 돌아가는 몸에 화가 난 적도 많았다. 타고난 유연함으로 여러 아사나를 소화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비교하는 마음과 질투는 요가를 미워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다 알고 있으니 힘들어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아서 긴장하고 굳어있던 신경이 녹아내렸다.
나를 망설이게 했던 세 가지.
나는 인스타그램을 한다기보다는 참고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요즘은 양질의 정보들이 인스타그램에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사진을 올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일부러이기보다는 올릴만한 것이 없다.
정보 습득을 위해 간혹 들어가 보는 인스타그램에는 화려함으로 가득하다. 예쁜 요가복을 입고 고급 아사나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분들의 사진들이 넘쳐난다. 가끔은 넋을 놓고 구경하다가도 결국에는 씁쓸한 마음으로 창을 닫는다. 나처럼 느린 사람에게는 그 화려함이 동기부여보다는 주눅 들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절망’도 없고, ‘과정’도 없다 그것이 더 씁쓸하게 한다.
나를 망설이게 했던 것 중 가장 컸던 것은 ‘나이’였다. 뭐든 배우고 시작하는 것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들 하지만 그렇다고 20대였을 때처럼 몸을 사용할 수는 없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고 말하지만 노화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신체적 능력이 떨어짐에도 할 수 있다는 의지만으로 모든 것을 해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해야 했다.
또 하나는 아사나의 깊이였다. 오랜 기간 간헐적으로 수련해 왔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도 1년이 넘었지만, 내 아사나의 발전은 더뎠고 깊지 않았다. 혼자 수련하다가 울기도 많이 울었다. 힘들어서가 아닌 억울해서 울었다. 이런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당연했다. 선생님이니까 선생님은 선생님다워야 하니까.
무엇보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내 삶에서 요가에 대한 사랑을 영영 잃게 될까 봐 무서웠다. 순수하게 좋아만 할 것을, 좋아했던 마음마저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나는 정말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요가를 하며 느꼈던 갈증과 답답함, 잘하고 싶은 욕망은 결국 지도자 과정을 시작하게 했다. 그 결심은 단순한 열정이 아니라, 수많은 갈등 끝에 얻은 다짐이었다.
첫 수업 날, 다섯 명의 교육생과 함께 조용히 매트를 깔았다. 소개보다는 호흡과 에너지로 서로를 알아갔다. 수련이 깊어질수록 실력이 드러났고, 마음속에 자리한 긴장은 온몸으로 전해졌다. 도반들은 여유롭게 흐름을 따랐지만, 나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몸이 더 뻣뻣해졌다. 결국 무리한 동작 끝에 허리에 통증이 찾아왔고, 부끄럽게도 수련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부끄러웠던 나의 첫 수련은 오히려 나는 '선생님이 꼭 되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누구보다 뻣뻣하고, 매 순간이 고통스럽고, 때로는 수련 도중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의 심정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수련 내내 애쓰다 돌아가는 이들이, 요가원 문 앞에서 '갈까 말까' 망설이지 않게 도와주고 싶었다.
‘줄 수 있는 것’이 생기자, 이제는 ‘어떻게 줄 것인가’가 고민하게 되었다. 아사나를 어떻게 표현할지, 어떻게 전달할지를 공부하며, 나는 점차 요가 안내자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 요가를 한다
수련을 하고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도 가끔은 수련 중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나이가 있다면 그 나이에 맞게, 느린 몸이라면 그 속도에 맞게,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의 마음과 몸에 시간을 주는 것.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요가는 그렇게 나를 나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기술이기 이전에 감정이고, 동반자이며, 거울이다. 수련을 하며 땀을 흘리는 시간이 좋고, 무너지는 나를 마주하는 그 감각이 좋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고, 잘할 수 없어도 괜찮다. 이제는 알아차린다.
어떤 날은 유연하고, 어떤 날은 단단하며, 어떤 날은 그저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나의 요가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여정이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나아간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냥 젖어드는 수밖에,
사랑하는 수밖에.
곁에 두고 매일 알아가는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사랑할 수 있을 때 흠뻑 사랑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