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벌초다. 지금은 납골당과 수목장 등이 확산되면서 벌초도 줄어들고 있지만 과거 설치된 묏자리 관리는 후손들이 살아가는 과정에 있어 하나의 의무처럼 전해지고 있다. 한가위라는 명절을 맞아 조상님들께 신고하는 의식처럼 묏자리를 관리한다. 4월 경 한식에 묏자리 정돈하는 시간도 가지니 일 년에 두 번 정도 찾게 되는 것이다.
성묘라는 의식을 통해 조상님을 찾아가는 시간은 그냥 하나의 절차만은 아니다. 나와 가족 그리고 친척 등 가족관계를 한번쯤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차례라는 허식에 갇혀 그 소중함을 잊기도 하지만 가족과 친지가 한번쯤 만남이라는 교류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간소화를 외치며 제사를 없애고 차례를 없애고 어느 순간에는 성묘라는 것도 잊고 지내는 시간이 된다. 어쩌면 자신의 뿌리를 돌아볼 시간을 놓치는 일일수도있다.
수십년전만해도 시제를 지내면 친척들이 다모이고 주변에 사시는 주민들까지 참여해서 이야기도 나누고 음식도 나누고 하는일이 지금은 몇사람이모여 시향이라는 행사를 한다. 그만큼 삶이 번거롭기때문일것이라 생각한다. 어느순간 이 일마져 없어질 것이다.
주말에 벌초를 했다.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 고조를 넘어 6대조까지 같이 있어 매년하고 있다. 한 곳에 있으면 좋은데 3곳으로 나뉘어 있고 두 곳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오래된 묘다보니 한 곳에 모으기도 뭐해서 할 수 있는데 까지 하려고 한다. 그래봐야 다음대로 내려가면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굳이하라고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 생각이다. 평지에 있는 한 곳을 찾아 조상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그것으로 다 한것이리라.
산소가 있다 보니 땅을 팔 수도 없다. 그냥 그 자리는 조상님의 묏자리가 있는 공간으로 충분하다. 그렇다고 산을 개발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니 다행스럽지 않은가. 어느 해부터 벌초를 못하게 되면. 수년이 가기 전에 묘소는 자연히 나무와 풀이 자라면서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묘소 앞의 비석만이 그 흔적을 알려줄 것이다. 이제는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방법이 가장 좋을듯싶다. 삶과 죽음이 어느 순간에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인가.
이번에 벌초를 하면서도 보니 주변에 묵어 가는 묘소들이 보인다. 어떠한 사정이 든 간에 오랜 시간이 흐르면 흘러가는 데로 남겨두는 것도 후손에게 해줄 수 있는 배려일 것이다. 오늘 할머니 할아버지의 벌초를 하는 이들이 나이 70이 되었는데 그다음에 이어갈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혹시나 접근하기 쉬운 곳은 공원처럼 정비를 해서 후손들이 쉽게 드나드는 공간으로 가꾼다면 좋을것 같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