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들판은 아름답다. 특히나 4월의 봄은 꽃으로 가득하다. 어느 곳을 가든지 화려한 풍경에 빠지게 된다. 바다 풍경과 어우러진 바위, 꽃 터널을 만드는 도로, 돌담이 만든 집과 밭의 신비로운 풍경, 시원한 바람결을 느끼게 하는 숲길 등 자연이 주는 혜택을 본다.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으며 아름다움을 담는다.
그러다 문득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작은 표지석과 안내문에 숙연해지는 마음, 아니 등골이 서늘해지는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관광지속에, 둘레길 안에 함께 있는 제주의 아픔이다. 곳곳에서 주민들의 집단 학살 현장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워진 흔적 위에 작은 안내판 하나에 전하는 지난 시간의 아픔이 모두 담겨 있는 듯하다.
지금 우리가 보는 화려함에 감추어진 추악한 시간의 흔적들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그 아픔을 이고사는 이들이 있는 곳, 화려함 속에 드러나지 않는 것은 드러낼 수 없는 약자였기 때문이다. 권력에 힘에 의해 짓밟힌 그 아픔은 세월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흔적이다. 우리는 그 아픔을 안고 여행을 떠난다.
근래의 흔적은 크게 두 가지다. 일제가 남겨놓은 흔적들이 있고 4.3의 흔적들이다.
올레길에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는 진지동굴이나 알뜨르비행장 등이 일제가 남겨놓은 상처의 흔적이다. 전쟁을 위해 이런 시설을 구축하면서 주민들이 동원되었다.
또 흑백논리에 4.3이라는 이름이 남긴 아픔이다. 당시 제주 주민의 1/10인 3만 명이 학살당했다고 한다. 학살의 현장은 섬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이 참상은 누구의 짓인가. 시간이 갈수록 상처는 아문 듯 보이지만 흔적은 점점 더 커져갈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상처의 흔적이다.
제주 여행은 아름다움 속에서 상처를 보는 시간이다. 그 상처 위에서 꽃이 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