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에 남아 있는 놀이 중 하나가 동전을 세우고 나무 막대기를 세우고, 강가에서 돌을 주워 탑을 쌓던 친구들과 놀이다. 거기에 나무를 깎아서 팽이를 돌리고 접시를 모로 세워 돌리고 하던 그 모든 것에는 세움이라는 것이 있었다.
게임이자 놀이였다. 그 추억의 한 단면을 중심잡기라는 이름으로 SNS를 통해 본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작품은 자연과 어울려 신비롭기까지 하다. 세움을 통해 감각적 교류를 이끌어내는 사람이 작가다.
변남석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금방 무너져 내릴 것을 쌓고, 세우는 그 행위 자체를 함께 즐겨본다.
세상을 세우는 작가다.
초감각적인 섬세함과 직관력 그리고 예술적인 감각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의지를 전한다. 강바닥의 돌을 세우고 병을 세우고 생활소품을 세우면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예술엔 한계가 없음을 보여준다.
중심 잡기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이다. 사물도 마음도 한쪽으로 기울면 넘어진다. 쉽지 않은 도전이다. 그것을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물을 통해 인생의 길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의 작품은 위태로워 보인다. 그러면서 안정적이다. 이미 그 자리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인 양 편안한 느낌이다. 옷깃 바람에도 넘어질 듯한 그 위태로움이 안정적으로 보인다는 것은 이미 그 위태로움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단순히 세운다는 것에 그친다면 작품이 아니라 버라이어티 쇼가 될 것이다. 작가는 세우기의 대상과 주변의 조화를 통해 사물과 세상에 이야기를 던진다. 현대와 과거를 함께 엮어 넣고 사물과 사람을 연결하는 재료와 해석을 통해 그만의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만들어 낸다.
가장 단순한 행동 하나로 만들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 세상은 멈추어 선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그 순간을 중심 잡기를 통해 되돌려 놓는 것이다. 그의 세우기 작업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변남석 작가의 페북 사진
단순히 물건을 세운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다른 작가와 협업을 통해 사물을 새로운 대상으로 표현한다. 기존의 평면과 입체적인 것들이 세우기를 통해 다른 시각으로 보일 수 있는 여지를 만든 것이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 것인가. 그의 작품 속에는 현재와 미래가 함께 있다.
서 있다 함은 과거지만 그의 작업은 진행형이다. 어디서 끝날지 모르는 끝없는 미지의 세계를 걸어가는 어린아이 같은 심정으로 작품을 구상하고 설치한다. 찰나의 순간이 영원한 멈춤의 시간으로 변하는 과정이다. 그가 진정으로 세우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왜 그는 세움이라는 새로운 경지를 찾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물체의 힘만이 아니라 그 공간을 구성하는 또 다른 것들을 향한 울부짖음 같다. 세운다는 것은 균형이다.
주변과의 조화다.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에너지의 공유, 호흡이다. 그것은 너와 나가 아닌 하나 된 소통이다. 대상이 지닌 에너지와 공유는 그것과 대화다. 에너지의 흐름이 일치할 때 세우기는 시작되고 완성된다.
세상의 모든 것이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듯이 같은 공간에서의 공생은 에너지를 공유하는 것이다. 작품은 이런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이다. 그 방법과 결과를 나타내 준다. 홀로 선 세상은 위태롭지만 안정적이다.
작가의 중심 잡기는 물아일체이자 사람과의 호흡이다. 그의 자유분방한 활동처럼 작품은 공간을 자유롭게 활보하고 그 공간을 누빈다. 작품과 공간의 일체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세상의 중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