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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Jan 25. 2022

작품에서 시를 읽다, 황문성 작가

사진과 그림의 융화


컬러가 나오기 전에는 백(黑白)이 사물을 표현했다. 사진도 영상도 그 흑백의 조화를 통해 아름다움과 밝음도 나타냈으며 거기에 감동하고 공감했다. 붉은 꽃이 흑백의 명암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서 컬러를 보곤 했던 것이다. 백 사진 한 장에 주름도 보이고 하얀 이도 보이고 붉은 입술도 있었다.


요즘은 원색이 넘치니 백이라는 용어 자체가 사라진듯한 느낌마저 든다. 한국화라는 먹의 예술도 뒤안길로 밀려나고 손 글씨도 드물게 쓸 뿐이다. 무엇인가 아쉽고 필요한듯하지만 그 중요성은 잊고 지낸다.


너무 밝은 세상에 살아간다는 것은 피로감을 만든다. 너무 밝아 보지 말아야 할 것도 보고 너무 강열한 색의 천국은 더 큰 자극을 강요하게 만든다. 거리는 온통 불빛이고 강렬한 색상을 서로 달리듯 드러내며 눈과 귀 온몸을 자극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강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가끔은 어둠의 시간도 필요하고 컬러가 아닌  흑백 화면도 필요하다. 백의 화면은 마음을 안정시킨다. 시각을 자극하지 않고 심장을 요동치며 뛰게 만들지 않는다. 자연이 존재감 없이 존재하듯이 그냥 있을 뿐이다.  


나는 그런 백 사진이 좋다.  흑백 화면의 무성영화가 좋다.


누군가 잃어버린 색을 찾고자 한다면 흑백 사진을 뒤적여보라고 하고 싶다.
밝고 어둡고, 낮음이 보이는 컬러가 있다. 이 작품을 보면 흑백의 시가 생각난다.


        


  

무제-1, 2011년, 황문성, 개인소장


작품에서 시를 읽다.


작가의 작품은 사진이면서 그림이다. 사진과 그림이 나가 되었다. 여러 작품을 함께 펼쳐 놓으면 각각의 다른 것들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 자연스러움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자연 구상이면서 추상적 이미지를 나타내려는 작가의 의도된 힘이 가해졌다.


   자연과 인공의 가미는 음식에 있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양념과 같다. 그 가미된 감초 역할로 인해 작품은 새로운 관점에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주변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 낯설지 않은 이미지가 주는 푸근함이 좋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역량도 오래된 사진 작품 활동을 통해 얻은 노하우에서 파생된 것일 것으로 보인다. 뷰 파이더(viewfinder)를 통해 바라보던 사물의 주체를 하나의 인위적 행동을 통해 다른 객체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사진일 수도 회화 일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 일 것 같으면서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듯, 자연이면서 인위적 행위가 첨가된 그러나 낯설지 않은 풍경이 그의 그림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행위를 통한 이야기가 있으며 그것을 통해 관객은 작품 속으로 스며들 듯이 다가갈 수 있는 여운이 있다. 그런 황문성의 작품은 시적(詩的)이다. 자연의 일부분과 삶을 본다. 그림에서 책을 읽듯 행간을 읽으며 이야기를 듣는다.


  자연과 사물이 하나로 연결되고 자연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느낌은 삶의 과정과 닮았다. 정화된 사물이 아닌 자연의 모습 그대로 인간 본성의 마음을 읽는 재주가 있다. 너무 밝지도 않은 흑색 톤 수묵(水墨)의 느낌은 편안하게 하는 정서적 서정성을 닮았고 마음을 토닥이는 역할을 한다. 그의 작품은 붐비지 않는다. 하나의 사물이 있으면 빈 여백이 가득하다. 그 빈 여백을 하나의 사물로 채우고 있다.


  작품을 보는 이는 이 여백을 통해 아름답거나 슬프거나 상상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이 그의 작품이 글(文)이 되고 시(詩)가 되는 이유일 것이다. 여백이 있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만이 있어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움은 시(詩)가 된다.


판화, 개인소장


20171026일 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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