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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Jun 21. 2022

행상 여인, 박남 작가

할머니의 손이 떠오른다


어느 주말 오후, 무더위 속에 아파트 근처 전통시장에 나갔다. 꼼짝하기 싫은 무더위지만 저녁거리를 좀 사야겠다는 아내를 따라 오랜만에 운동 삼아 시장을 둘러보았다. 주말이라 그런지 대부분 가게는 문을 닫았고 문을 연 가게 몇 곳에서는 더위를 쫓느라 부채질이 바쁘다. 길거리에 앉아 채소를 파는 연세가 있는 할머니 몇 분은 가져온 물건들을 정리하고 손질하며 더위와 싸우고 있다.  


마트에 들러 몇 가지를 사고는 난장에서 야채류를 조금씩 나누어 파는 할머니에게서 호박과 깻잎을 사는데 호박 3개에 2천 원, 깻잎은 몇 움큼이나 되는 데 천 원이다. 거래 가격을 잘 모르지만, 마트보다 정말 엄청나게 싼 가격이 아닌가 싶다. 깻잎을 검은 비닐에 담던 할머니가 남은 것 다 줘야겠다며 집어 드시는데 이미 산 양만큼이나 남아있는 것이었다. 몇 푼 되지도 않는 가격에 팔면서 더 주려는 할머니의 마음을 그것은 더 파셔도 될 것 같다고 하고는 돌아서는데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는 말씀을 입에 담으신다.


주말에 사람도 없는 시장이라 그랬을까. 푸짐한 전통시장 분위기도 좋지만, 이렇듯 정 가득한 분들이 물건을 팔고 있기에 우리의 전통시장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 할머니가 손주를 위해 감춰두었다 꺼내 주시던 그 먹거리들도 바로 그런 마음, 그 손길에서 비롯되었다. 짧은 나들이 길, 할머니의 정을 느끼는 소중한 오후였다.



여인은 약한 존재이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처럼 내 어머니는 심지가 곧고 정신력 강한 한국 여성의 대표적인 분이었다. 이 작품을 보면 어머니, 할머니가 생각난다.






행상 여인(行商女人-Peddler woman), 6F, 박남 , 개인 소장



행상 여인의 함지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어느 함지는 가족의 생계가 목숨처럼 붙어있고, 어느 함지에는 자식의 꿈이 담겼다. 함지는 짐이자 가족의 삶이다. 삶의 활력이 담겨있다. 끈질긴 어머니(여성)의 저력이, 삶의 애환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연약한 모습의 고단함보다는 활기차고 기운 넘치는 삶의 의지가 보인다. 여인이라는 말은 약하지만 억척스러움으로 가난도 물리치며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그 나약함을 벗었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와 견주어 이길 수 있는 자는 없다. 바로 우리들 어머니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슈퍼우먼이다. 집안 관리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키우고, 남편과 부모를 봉양하고- 그것도 모자라 밭일을 하고 좌판을 열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그 묵직함은 좀 더 나이가 들어 할머니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위해 일했다. 우리의 삶에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것은 바로 이런 어머니, 할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삶은 바로 그들의 삶이었다.



* 20181003 블로그 글 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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