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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Jun 20. 2022

햇살 받은 쉼이 있는 조각, 이봉식 작가

생명의 소리

돌은 변하지 않을 것처럼 단단하다. 그러나 그 시간의 흐름을 통해 변화의 과정을 보게 한다. 강물에 씻긴 돌은 시간의 흐름이자 멈춤이다. 잠시 쉼의 모습이다.  


그 돌에 작가는 부호를 새겨 넣는다.  


돌이 지니고 있는 그 시간의 흐름을 통제하고 응원하기도 한다. 그의 조각은 인공적인 가미지만 그 돌의 숨결에 순응한다. 돌이 쉴 때 쉼표의 부호를, 환호할 때 응원의 부호를, 머뭇거릴 때 의문의 부호를 던지며 돌이 지닌 생生의 의미를 들려준다.






“돌의 시간성을 통해 인간의 삶을 사유하다. “     


하루를 10년 같이 살아온 지난 과도기의 어른들 삶에는 쉼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생활 자체가 죽고 사느냐처럼 삶의 목숨 밧줄을 잡고 있기에 쉼이란 곧 벼랑 아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알았는지 모르겠다. 그 희생의 결과가 자식은 쉼이라는 삶의 이정표를 볼 수 있는 것이리라.         



사진 ; 이봉식 작가 페북에서 가져옴((그리고 공간, 2018.11.23~12.5, 갤러리 쿱)



조각가 이봉식의 돌 작품을 보면서 삶의 쉼표 의미를 되새겨본다. 작가는 대리석이 아닌 강돌(江-)을 그대로 활용하여 쉼표와 쌀을 형상화하여 표현했다. 그 단단한 돌을 정으로 쪼아내고 인위적 형태를 만들기까지 작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강돌은 수많은 시간을 거쳐 지금의 모양을 만들어 내면서 스스로 강해질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다다랐다. 거기에 덜어내고 또 다른 채움의 공간을 만들어 냄으로서 작은 변화를 통한 시간의 존재성, 흐름을 만들어 내었다.       


쌀은 1년의 긴 시간과 농부의 정성이 융합되어야 탄생하는 생명체다. 돌조각 속에 나타나는 쉼표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한 발짝 느림, 쉬어감을 나타낸다. 욕심을 부린다고 쌀알을 더 얻을 수도 없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함을 알려주는 통신의 모스부호다. 어느 순간에는 쉼표가 필요하고 어느 때는 마침표가 필요하며, 누군가에게는 느낌표와 물음표가 필요한 것이 세상의 큰 줄기 중 하나다. 그렇지만 가끔은 배제되는 것이 바로 이 부호들이다.     


이봉식 작가는 이런 인간의 삶의 모습을 자연에서 찾고 의미를 전하려 한다. 세월의 흔적은 이미 강돌이 간지하고 있지만 작은 쉼표 하나를 인공적으로 부여함으로써 돌의 존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다. 작품은 강가의 돌무더기 위로 햇살이 내리쬐어 따뜻해진 기운 같은 것을 전한다. 오한에 떠는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온돌 같은 느낌이다.      


무겁고 차가운 돌이 부드럽고 가벼운 미소를 띠게 만드는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작가가 의도하는 마음의 휴식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물에 한글의 의미를 담아 더 친근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던 작가의 조각품은 어쩌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차용한 우리의 삶인지도 모르겠다.      


돌조각이 차갑기보다 반갑고 푸근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릴 적 멱 감던 오대천의 강돌과 닮았기 때문일까? 자연을 표현하였으나 보는 이는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쉼표의 조각, 푸근하다. 생명력을 가지게 하는 조각의 힘이야 말로 창조다.



 *20181201 갤러리 쿱 전시를 보고 쓴 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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