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등산을 좋아한 적이 있다. 주말이면 배낭을 메고 산으로 갔다. 산이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직장생활이 힘들고 어딘가로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다스리는 하나의 방편이었다.
그러다 산이 좋아졌다. 오르면 오를수록, 힘들면 힘들수록 그 기쁨도 배가 되었다.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깊은 산속에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배낭을 내려놓고 있으면 산짐승과 나무들의 속삭임이 들여오는 듯했다. 가장 행복하고 자신에 심취할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처음엔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기에 땅만 보고 걷다가 어느 날부터는 여유롭게 주변의 풍경을 보게 된다. 한때 가장 많이 올랐던 태백산은 높지만 오르기에는 편안하고 짧은 산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보이는 풍경은 갈 때마다 다르다.
오르는 동안 보지 못했던 산행의 풍경을 건너편으로 넘어서 내려가면서 본다. 똑같은 길이 아니지만, 산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오르면서 보이지 않았던 많은 풍경이 내려가면서 보인다. 오를 때 잠시 뒤돌아보았던 풍경이 선명해진다.
바로 여유로움이다. 정상에 올라가고 나면 더는 오를 곳이 없다. 그 자리를 누군가에게는 비워줘야 나는 안전하게 산에서 내려갈 수 있고 또 다른 이는 정상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오랫동안 있을 것 같은 기분도 시간이 흐르면 쉬이 내려가고 싶은 욕구에 젖는다. 오르기보다 더 위험한 것이 산에서 내려오는 길이다. 힘도 빠지고 내려갈 바쁜 마음에 때로는 몸에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등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더 주의해야 다치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가끔 내려갈 곳을 생각한다. 그리 높이 오르지는 못했지만, 더 높은 곳을 오르기를 중단하고 때로는 안전하게 내려갈 곳을 생각한다.
누군가는 나를 스쳐 오를 것이고 누군가는 앞서서 내려갈 것이다. 산을 오르기 위해 몸의 상태를 조절하며 정상을 밟았듯이, 내려갈 때에도 주변의 풍경에 동요하지 않고 나의 상태를 유지하며 안전하게 가고 싶다.
산행을 함께할 동무가 있으면 더 좋지만 때로는 혼자 여유롭게 주변의 풍광을 즐기며 산행을 하는 것도 즐겁다. 인생이 함께 하는듯하지만 결국 혼자 가는 길이 듯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산을 오름도 공부다. 앞만 보고 오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멈추어 서서 내려오는 이에게 길을 비켜주어야 하고, 정상에서는 뒷사람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어야 한다. 너무 오래 버티면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