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흐르는물 Feb 14. 2022

바다, 김재신 작가

격렬한 마음속 풍랑이 지난 후

          

작은 화면을 가득 채운 반짝임. 바다의 색, 바다의 웃음이다. 바다는 항상 있었지만 매일 새로운 공간이다. 작가는 그런 바다를 상상한다.


“반짝이는 바다가 있다.

어제도 보았고 오늘도 본다.

바다는 아름다움으로 영혼을 지배한다. “     


바다는 반짝이는 아름다움을 모든 것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작가가 그리는 통영 앞바다는 언젠가 내가 본 그 바다 일 수도 있을 것이다. 통영 앞바다는 아름답다. 잔잔한 물결이 만물을 가득 채운 듯  빛을 발한다. 그것은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바다의 아름다움이자 사람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바다. 4호. 2017, 나무판위에 조각, 개인소장



그림 속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다가 눈앞에 갑자기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환상에 빠졌다. 섬이 있고 잔잔한 바다가 은빛 색을 드리운 맑은 하늘 풍경에 빠져 바다가 예쁘다 했는데 문득 저 하늘 한 자락에 드리운  구름은 작은 섬이 되고 앞의 산은 바다 괴물이 되어 험악한 모습으로 솟아올랐다. 빛나는 잔잔한 바다는 곧 거친 파도에 산산이 부서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왜 산이 파도가 되고 하늘은 먼바다가 되었을까.  처음 보았을 때는 작은 동산 앞에 펼쳐진 대지의 꽃밭 같은 느낌도 있고 고요한 바다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의 제목 '바다'를 보는 순간 눈앞의 풍경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버렸다.  바다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먼저 다가온 것일까.       

   

“바다를 그린 것이 아니라

바다를 새겨 넣었다. 바다 빛의 반짝임은

날카로운 조각칼에 찢기어 흩어진다. “     


저 고요와 정적을 느끼게 하는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힘은 무엇일까. 바로 위쪽의 짙은 바다색이 주는 강인한 대비다. 작가의 관점에서 관객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면서도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제목은 의도된 것이었을까? 언 듯 초원의 풍경이 그려지는 저 아름다움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까 하여 더 깊이 빠지면 강한 자극을 주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다라는 제목 속에서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마음에 격랑이 일 때에는 강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아름다움 뒤에는 추함도 있으니 잔잔한 바다 뒤에 거친 파도가 없겠는가.     


작가가 작업하는 조탁 기법은 색의 표현에 있어 한 지점에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더 현란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바다는 쉼 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보습을 보여준다. 그런 모습을 표현하는 데 있어 -태양에 반사되어 바다가 만들어 내는 빛의 색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느 한 가지만으로 옅고 짙음만으로 가능하겠는가. 반짝이는 물결의 일렁임 만큼이나 만들어내는 빛은 헤아릴 수 없으니 그것은 바다를 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 바라본 바다는 어제 본 바다가 아니듯 내일은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작품은 보는 데로 생각하는 데로 관객의 뇌리에서 만들어졌다 지워졌다를 반복한다. 그것은 한번 뇌리에 심어진 순간부터 끊을 수 없는 사슬이 된다. 작가의 사상이 희미해질수록 관객의 지배력은 높아진다. 그것은 사랑이다.



20191219 글 수정 옮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