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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Mar 28. 2022

생활 속 미술을 위하여

그림을 즐기는 여유

      

나는 왜 이 작품에서 해방과 자유를 보았을까? 자연스러운 편안함이다.      

텅 빈 공간을 우리는 삭막함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텅 빔이란 아무것도 없음이 아니라 삭막함, 공허함이라는 단어까지 같이 내포했다.


예전 한집에 대가족이 함께 하던 시절에도 벽과 문에는 그림과 사진이 걸리기도 하고 문창살에는 꽃잎이나 단풍 나뭇잎을 넣어 아름답게 문양을 만들어 내었다. 그것으로 밋밋하고 삭막함을 없애버렸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넓고 비어있다. 그 비어 있는 만큼이나 마음도 공허하다. 우울증을 겪는 인구가 늘어나고 자살이라는 극한 행동을 하고 가족 간 이웃 간 마찰이 늘어난다. 마음을 둘 곳이 없어서가 아닐까.      

우리는 예전부터 이용하던 손부채 하나, 병풍을 통해서도 마음이 안정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을 보아왔다. 지금은 그림이라는 것에 대해 특정인만 소유하는 가치 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림을 경제적 가치 투자로 소유하고 명성과 체면을 위해 소장한다. 더 이상 그림이 좋아서 감상하기 위해서 그림을 소장하는 이는 사라진듯한 착각에 빠진다. 어느 전시장에서 유명  작품은 순식간에 빨간 스티커가 붙는다. 또 아마추어 같은 작가 전시회장에 화환과 사람들로 북적이며 빨갛게 붙어 있는 스티커를 보면서 과연 그림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난 세월 동안 그림이 경제적, 권력, 명예라는 감투를 쓴 적이 아니었던 때가 없었고 국민 마음을 어루만지는 역할을 아니한 적이 없었다는 것은  체험으로 알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먹고사는 일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해방이 되었다. 그것은 삶의 질에 대한 과정을 좀 더 깊이 생각할 여유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각 가정에 비어있는 빈 공간 벽에 맘에 드는 그림 한 점을 놓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리되지 못하고 있음은 오랫동안 깊어진 그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결과다.      


외국 그림 프린터 물을 멋있다고 벽에 걸어놓고 비싼 소파와 대리석 바닥, 벽지로 장식된 공간 의식에서 해방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서도 이런 의식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아이들 방과 거실에 그림을 걸고 그 의미를 나누며 생각을 키우자. 아이들이 있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 그림을 걸고 그것을 통해 더 많은 생각,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주자.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공공시설, 복지시설, 종교시설 등 함께 모여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기회를 만들어주자.     

 

사회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는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 그 시작점은 있고 우리는 그 시점을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비싼 옷, 비싼 음식, 술 한 잔, 커피 한 잔 덜 마시면 우리는 쉽게 그림을 구입할 수 있다. 이제는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긍정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바탕이 되기에 말이다.     



20200917    글 수정 옮김

* 대문사진  : Springtime and Love, 1878, Francesco Paolo Michetti, 시카고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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