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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Mar 03. 2022

지역 예술작품 설치와 알림의 중요성

무지함과 관심

       

얼마 전 그림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 한마디에 공간엔 침묵이 흘렀다.   

       

"똑같은 그림을 왜 사느냐.

그 작품

어디도 있고

어디에도 있고 하더라.

모양만 조금 다르게 해서 그렸던데

그런 작품을 왜 여기저기서 사고 전시하나

박수근이나 이중섭 정도 되면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그 지역 특색 있는 작품을 전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다른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때도 아마 지역에 조각 작품을 설치한 것을 놓고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우리지역 특색에 맞는 작품을 설치해야지

다른 곳에 가도 볼 수 있는 작품을 여기에도 설치하는 게 맞나? 돈이 아깝다. "     


두 이야기 사이에는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같은 사람이 이야기한 듯 각인되는 말이었다. 지역 특색이라는 단어와 똑같은 작품이라는 것에 잠시 혼란을 겪었다.     


지역 특색이 있는 작품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똑같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어느 작가분이 이야기하는,     

"같은듯해도 똑같은 작품은 없다. 이 작품과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과 같을까.     


오랫동안 미술 작품을 보면서도 다른 곳에 있으니 여기에 같은 작가 작품이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은 난해했다. 그 기준이 궁금하기도 했다.     


작품에 대한 이해 부족일까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충격이 컸다.     


우리 사회가 지식을 가르치며 고학력자를 양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사회에 받침이 될 소양은 너무 멀리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경험을 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생각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지역 미술관이나 작품을 전시할 때 많이 고민하고 그 취지를 잘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취지로 했다고 하여도 그것을 보는 사람이 달리 해석한다면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없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중요한 것이다.     


작품을 전시하는 이유나 행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많을수록 이런 걸 왜 하지? 하는 불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행사와 전시를 기획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주민들의 문화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주 보고 체험하다 보면 이해의 폭도 넓혀 갈 수 있을 것이다.     




20210618 블로그 글 수정 옮김

* 대문사진: On a Balcony, 1878, Mary Cassatt, 시카고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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