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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May 30. 2022

박음질로 드러내는 마음의 평화, 김명숙 작가

천 조각에 생명을 넣다

연산골 화실 작품 앞의 작가 촬영



춘천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연산골 깊은 곳 언덕 위 화실에 봄이 왔다. 성급한 벚꽃은 피었다 지고, 노란 개나리가 피고 철쭉이 봉우리를 만들며 시간을 기다리는 곳이다. 집 전체가 전시관이자 작업 공간이 된 곳, 가녀린 여성의 움직임일 거라는 생각과 달리 삶과 작업의 공간에서 강인함과 애착이 드러나 보인다. 김명숙 작가의 화실을 처음 방문한 4월 봄의 느낌이다.     


“천조각의 따뜻한 감촉을 박음질로 엮어 마음의 평화를 만든다. 손길이 닿은 정성만큼 행복이 묻어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     


마당으로 이어진 거실의 테라스에 앉아 드립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는 작품과 삶의 모습이 어우러진 그대로다. 삶의 초기 교직생활과 중반의 어린이를 돌보던 시간 그리고 전업 작가로 걸어온 시간은 고스란히 작품 속에 녹아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아픔의 순간도 작품의 변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다. 지금 무르익은 연륜의 묵직한 삶의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내는 작업을 이루고자 애쓰고 있다. 세상을 묶어놓은 코로나19의 사회적 격리가(?) 오히려 작품을 하는데 더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말처럼 요즘은 작품에 집중하며 큰 작품에 집중하고 있다.         

         

재봉틀과 손바느질을 통해 드러내는 작품은 천 조각이 바늘에 꿰일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그 한 점 한 점이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룬다. 작가의 작품은 추상이다. 그 속에서 관객은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내야 한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모양이지만 작가는 작품의 이야기를 말로 들려주는 것을 거부한다. 다만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이 작품을 했는지 그동안 작품의 흐름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알려줄 뿐이다. 작품 속에 드러나는 이야기는 고스란히 보는 이의 몫으로 남겨놓았다.     


추상은 어렵다. 무엇을 유추하기도 힘들다. 그냥 느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김 작가의 작품에서는 봄도 느껴지고 겨울도 느껴진다. 아지랑이가 올라오는 풍경도 보이고 새가 지져 귀는 풍경도 있다. 어느 작품에서는 산과 들의 여유로운 풍경이 드러나기도 하며 시간의 흔적을 더듬은 고려 창령사터 나한상의 미소가 작품 속에 가득히 들어있는 작품도 있다. 이것은 아마도 작가가 이야기하는 심적 변화에 따라 그때 만들어진 작품의 경향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그의 작품 중 유난히 노란색으로 가득한 작품이 있다. 어느 시기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들 당시 노란색으로 가득한 작품을 만들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고 했다. 그 아픔의 순간을 이겨내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밝은 색을 찾아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 시기를 넘겼다. 그래서 그럴까 이야기를 듣고 작품을 다시 보니 조금은 우울한 느낌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고통의 순간에 만들어진 작품은 화사한 기운이 가득한 듯 느껴진다. 아마도 모든 에너지를 작품에 쏟아낸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요즘은 인생의 모든 것을 담아 정리하듯 깊이 있는 작품을 하고 있다고 했다. 대작이다. 화면은 회색 계통이 많이 보인다. 조금은 묵직하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작업이라고 한다. 그런 그녀의 마음이 그 속에 담겼다. 색감이 주는 묵직함과 그 속에서 아련히 피어난 꽃 봉오리(?)는 삶의 지난 간 흔적을 보여주듯 가득히 피어나고 있다. 그동안 그녀가 만들어낸 발자취만큼이나 꽃은 피어날 것이다. 인생의 무게를 담아 다시금 피워내는 작품, 그것은 분명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려줄 것이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코로나)’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이용해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녀는 평생 아름다움을 통해 관객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다짐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연산골 화실 작품 촬영



작년 처음으로 유럽과 러시아에서 대규모 전시를 하면서 받았던 관객의 환호와 열정이 그녀에게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고 한다. 시골 골짜기 작가의 작품이 세계 메인 전시장에서 팔리고 관객의 예찬을 들었다.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기회를 통해 자신의 틀을 벗어났을 것이다. 오늘 내가 걸었던 이 길을 후배들이 좀 더 쉽게 걸어갈 수 있도록 자신이 더 열심히 가야겠다는 다짐의 말처럼, 그녀의 작품은 오랫동안 관객의 가슴을 따듯하게 할 것이다.      


화실로 가는 골짜기의 좁은 길은 마음의 풍요를 이루는 장소로의 지름길이었다.     



20200416 연산골을 나오는 길 위에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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