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례나 작가의 개인전인 '휴머니즘의 봄' 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4F를 다녀왔다. 철 작업을 통한 표현이라고 느끼기에는 너무 발랄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받는 작품들이다. 살아있는 생명의 그림자를 보듯 작품마다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인간군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작가는 작품에 혼을 불어넣는다는 말처럼 그의 작품은 철판이 열에 녹아내리는 순간 생명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각각의 색을 입고 형상을 갖게한다.
사람의 형상를 띠고 있지만 그 모습만 보일뿐 표정을 읽을 수 없다. 형상에서 형상의 감정을 읽는 노력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형상의 감정을 읽게 만든다. 움직이는 동작을 통해 내가 하고자 하는 다음 의도를 알게 만들었다. 인간 모형의 중첩된 이미지를 통해 나와 나의 그림자, 내 본연의 의식이 머물고 있는 곳이 앞인지 이면인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가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지 않고 보여주고자 하는 이면을 관객의 시선으로 나타내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중첩하여 드러낸 사람 모양은 어울림이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 모습을 드러내며 그 속에서 갈등하고 겪어야 하는 우리들의 삶을 모두 담았다. 춤을 추듯 온몸을 흔들며 무대를 장식한다. 삶의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마음의 평안을 보여준다.
특히 철판을 잘라 형태만 드러낸 작품에서는 작가의 소중한 것을 지키는 꿈을 드러내고 있다. 가슴에 품고 있는 갈매기, 꽃 같은 것을 통해 지금의 마음, 우리들 삶에 있어 소중한 것들, 가치를 표현해 내고 있다. 철판에 색을 입혀 그 감정의 폭을 더 넓혀주고 있어 생각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그의 작품은 인간사의 행복, 충만,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두꺼운 철판을 자르고 녹이고 휘어 그 날카로움은 숨긴 채 그 속에 인간의 숨결을 담는 창조자가 되고자 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살아있는 숨결을 그리워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것이 작품 속에 숨겨진 비결일지도 모르겠다.
철판을 자르고 색을 입히고 하는 그 과정 자체가 지녔을 긴 시간의 흐름과 땀방울이 그 작품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초기 작품의 두터운 철판이 지닌 속성의 무거운 이미지를 한결 벗겨낸 작품들이 점점 더 작가의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이유겠다.
특히 십자가로 새겨진 구원의 손길 같은 이미지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받을 수밖에 없는 갈등과 핍박의 순간에 대한 누군가 손길을 드러낸듯싶다. 우리가 사랑하고 믿어야 할 존재가 누구인지 그리고 손길을 내밀어 주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십자가를 통해 작가의 작품 속 이야기를 드러내고 있다. 성경 속 이야기지만 우리 삶의 모습과도 어우러짐이다.
여기에 대비되어 마주 보게 배치된 커다란 사람들 뒤로 작은 인간 군상의 작품은 나와 내 주변의 얽혀있는 세계를 바라보게 만들고 있다. 각자의 삶이지만 한울타리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삶은 인간의 존재를 더 커다랗게 바라보게 만든다. 내가 주인공이고 내 주관적인 삶이지만 언제나 주변에 어울려 있을 수밖에 없는 인과관계라는 한 틀을 바라보는 듯하다.
그의 작품은 생명의 춤사위다. 무채색의 사람들을 통해 내가 입혀야 할 색을 찾게 하는 춤사위다. 살아가면서 내가 만들어 내야 할 색인 것이다. 차가운 철이 생명을 얻음으로써 따뜻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