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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Sep 23. 2021

[감상]아가페 T-30, 오현철 작가

죽음을 앞둔 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

          

안락사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져가고 있다. 생의 마지막에 과학문명의 이기에 의해 고통 속에서 자존심마저 버려야 하는 상황을 원하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면에서 안락사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계에 의존해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큰 부담이다. 그렇다고 쉬이 과학의 힘을 마다하기에는 우리의 윤리의식(?)이 너무나 강하다.  특히, 처음 그럴 때를 접한다면 당황하고 두렵고 죄스러움에 어찌해야 할지 판단하기 마저 어려운 상황에 접어든다. 그러하기에 안락사에 대한 자신의 강한 의지는 평소에 드러내 보여야만 나 스스로 판단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 쉽게 결단할 길을 열어줄 수 있다.     


내 나이 삼십이 조금 넘은 어느 날 어머니께서 암으로 돌아가셨다. 현재도 불치의 병이지만 당시만 해도 암이란 참으로 고통의 연속이요 결코 헤쳐 나올 수 없는 늪이었다. 꽤 오랜 시간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으셨지만 몇 해를 넘기지 못해 재발함으로써 끝내 회복되지 못하셨다. 그러나 결코 당신의 병을 고칠 수 없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함은 그 나이가 너무나 젊은 쉰다섯이었다는 것이다. 너무나 억울하고 원통하였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스스로 자신의 병세를 판단하신 어머니는 조용히 ‘내 병 고칠 수 없다면 집에 가자 ‘였다. 병원에서 죽기는 싫다는 말씀에 집으로 모시겠다는 말로 병세의 심각성을 환자에게 전할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힘든 순간이었다. 그것은 바로 죽음에 대해 생각도 직접 본 적도 없었기에 더 큰 충격이었다. 남편과 자식이 있지만, 누구도 언급할 수 없는 영역이 죽음이라는 것임을 처음 깨달았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의 마지막은 고통 속에 힘든 시간이었지만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시던 그 모습 속에서 나 자신도 죽음이라는 존재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과학문명에 의한 삶의 연장을 거부한 것은 어머니의 선택이었고 따라야 할 하나의 의식이었다.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숭고한 의식 같은 죽음 앞에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고 준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내가 죽음으로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나 스스로 정리하고 있다면 결코 주위 사람들도 당황하거나 고통 속에 힘들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도, 죽음으로서 소멸 하여가는 육체에 과학의 산물에 의한 연명치료를 거부할 것이며, 마음이 깨끗한 자에 쓸모 있는 것들을 나눠주고(장기기증), 화장 후 내가 좋아하는 나무 밑에 뿌려지기를..... 어머니의 육체를 빌려 세상에 나왔듯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는 그런 마지막이 되고 싶다.      

누군가 내게 죽음에 대한 준비를 이야기하는 어려움은 덜어주어야 하겠다.       

         


이 작품을 보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따뜻한 어머니의 품이 그리움과 동시에 슬픈 어머니의 모습이 교차하는 나는 그 아픔 속에서 방황하고 길을 찾았다. 그리고 편안함이 있는......     




아가페 T-30, 오현철      

     

현대인의 삶을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그림 속의 기하학적이며 메커니즘적인 무늬는 자아를 상징하며, 여체는 첫 아이를 출산한 젊은 엄마의 모습이고, 아이가 자라면서 겪게 되는 것을 문자나 기호, 기하학적 추상을 통해 모성의 절대적 사랑 안에서 자아가 성장한다는 주제로 그려지고 있다고 했다.'     


아가페 T-30, 오현철, 개인 소장



혼돈과 자아의 성찰을 이루는 삶의 과정에서 자신의 본질을 추구해 나가는 성장의 과정이라고 할까.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의 자아를 찾아 헤매는 현대인의 아픔과 이성을 추상적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고 할 것이다.  누구나 겪는 과정이지만 누구는 그 과정을 힘들고 고난이라고 여기지만 어떤 이는 그럴 수도 있지 하는 현실의 벽에 순응하며 그 돌파구를 찾아간다.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홀로 던져진 현실 속의 자신을 발견하고 당황했을 아이의 모습이 모성애를 자극하고, 엄마의 든든한 후원을 등에 업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모습까지. 작가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오는 안타까움과 미래의 꿈에 대한 희망을 이 작품을 통해 표현해 보고자 한 것이 아닐까.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그것을 함께 해 줄 수는 없는 현실의 방황 속에 자신을 찾아가는 꿈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주는 의미는 바로 여인의 상으로 모체이자 회귀 본능 인간의 본성을 찾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작품은 2010년 교학사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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