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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Nov 18. 2022

전시회는 화분보다 <격려금으로

실리를 찾아


화환으로 가득한 공간, 길게 줄지어선 모습은 병정들의 열병식 같기도 하고 왕을 맞이하는 신하들의 근엄한 자세와도 같다. 새로움을 알리고 축하와 슬픔을 공유하는 의식의 행진이다. 다양한 공간에서 그 의미를 자랑하지만 때로는 그것 자체가 권력과 재력의 수단같이 비추어지는 속물근성도 담고 있다. 아름다움 속에 감추어진 진실 게임 같은 것이다.


얼마 전 어느 전시에 갔더니 입구부터 커다란 화환과 화분들이 전시장 안에까지 가득했다. 인기를 실감하게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도 이런 분위기가 과연 전시장과 어울릴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괜한 질투일까. 적어도 이런 공간에서는 말이다.


대부분의 전시장이 비슷하지 않을까. 차이는 있지만, 전시장에 서 있는 축하 화환과 화분은 쉬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진정한 축하의 의미도 있지만 체면치레용으로 보여주기 의도도 깔려있다. 화분 하나에도 다양한 사연이 숨어 있을 것이다. 축하 꽃이 많으니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다. 며칠 전시회를 치르고 나면 그 화분들을 정리해주어야 하는데 집이 가까우면 가지고 갈 수도 있지만 대부분 처리에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보내온 화분 하나하나의 가격도 적지 않다. 어쩌면 화분보다 그 돈이 작가에게 전달되는 것이 더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가 전시회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비가 소요되고 경제적인 부담이 된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화분 대신 격려금으로 주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마음뿐 아니라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전시장 방문 시 꽃은 손에 들고 오는 작은 꽃다발이나 한 두 송이로 만족하면 어떨까. 작품을 사주면 좋겠지만, 전시장을 찾아 축하해 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충분히 전달될 것이다.      




20170725 글 수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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