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밤은 온갖 상상을 하며 두려움을 몰고 온다. 그런 밤은 대체로 두려움의 상징이다. 그러나 별이 총총이 내려앉은 하늘은 궁금증으로 가득하게 만들기도 한다. 밤은 모든 것을 삼킨다. 무섭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하다. 밤은 어떤 색을 지니고 있을까? 예전엔 검정이라고 했는데, 어느 순간 검정에도 다양한 색이 있음을 안다. 새까만 하늘에 별 하나 드러나면 색이 바뀌고, 초승달에서 둥근 보름달로 바뀌면 색이 바뀐다. 도시의 밤은 화려한 빛이 가득하고 산속의 밤은 달과 별빛, 반딧불이 밝힌다. 모든 색을 삼켜버리는 밤이다.
그런 밤을 화가는 어떤 색으로 그렸나?
고흐가 그린 밤하늘은 아름답다. 반짝반짝 빛나는 하늘이 환하게 보인다. '별이 빛나는 밤'은 빛이 춤을 춘다. 별빛이 눈송이처럼 내리는 착각에 빠진다. 밤이 살아 있다. 검은 밤이 아니라 파란 하늘에 노을 짙은 풍경 같은 밤이다. 깊어가는 밤인지 깨어나는 밤인지 색을 보이지 않는다. 밤하늘이 그렇게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음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까.
전시장에서 만난 김성호 작가 그림 속 밤은 은하수처럼 온통 빛이다. 아주 작은 불빛이 모여 거대한 띠를 형성하며 도시를 만들었다. 화려한 빛에 도시가 잠기었다. 살아가는 사람들의 활기를 느끼게 한다. 어둠이 머물러 있는 하늘에 빛이 내려앉았다. 새벽을 그리워하는 도시인의 몸부림 같은 느낌이다. 아침이 다가왔음을 알린다. 화면을 가득 채운 밤 보다 작은 한쪽 공간을 차지하는 불빛이 더 빛남은 밤이라는 색이 지닌 힘이다.
그런 반면 정영주 작가의 불 켜진 마을은 깊어가는 저녁시간을 말해준다. 집집마다 하나둘 불이 켜지고 오늘 하루의 삶에 감사함을 갖는 시간이다. 그림 속 집은 달동네를 연상시킨다. 지난 시간의 그리움과 함께 아픔도 있다. 끝난 것 같은데 아직도 누구에게는 현재 진행형인 고된 삶의 한 부분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하나씩 불이 밝혀질 때마다 달동네도 사람 사는 곳임을 알게 된다. 다닥다닥 붙은 낡은 집에서 퍼져나가는 불빛은 희망이 된다. 낡은 흔적마저 밤의 색을 통해 감싸 안았다. 비교 불능의 공간이다.
밤을 표현한 예술가는 밤을 그리기보다 자연을 빌려 자신을 드러내는데 더 열광적인 느낌이다. 깊은 감정의 사유를 화폭에 담아 간직하고자 했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낡은 감성과 앞서가는 욕망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옛 그림 속 매화나무와 어우러진 달은 깊은 밤을 의미하고 폭포 위에 걸린 달은 초저녁 밤을 만든다. 기다림이다. 작가의 심상이다. 적적한 풍경 속에서 기다림이 있는 시간의 흐름이 있다. 세상을 얻을 지혜를 탐닉하는 자의 마음이 있다. 매화가 지닌 시련의 아픔도 둥근달이 보여주는 가득함도 마음속 정의일 뿐이다.
그림은 선을 통해 색을 통해 마음을 사로잡는다. 몇 마디 말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나는 지혜다. 같은 밤을 그렸지만 표현하는 방법을 통해 밤이 지닌 어둠뿐 아니라 그 속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여준다. 그것이 그림의 힘이다. 밤을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는 보통의 밤을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특별하게 본다. 밤이 주는 의미 그 속에 스며있는 색을 본다.
어린 시절 밤은 무섭기도 하였지만 안전하고 따뜻한 시간이기도 했다. 어둠이 내리면 불을 밝히고 가족이 모두 모여 앉아 식사를 같이한다. 잠자라는 혼자가 아닌 할머니 옆에서 든든한 지킴을 받으며 잔다. 그것은 기억이자 일부는 상상 속의 두려움과 안전의 기쁨이 함께 담겨있다. 요즘의 도시는 밤이 없다. 별과 달 빛이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대신 화려한 조명과 네온사인으로 밤을 밝힌다. 요즘 세대에게 밤을 표현하라고 하면 어떤 색일까.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밤 풍경은 작가의 꿈과 나의 기억이 교차하며 보이는 상상일 수도 있다. 내가 그리는 밤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