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이라는 말처럼 먹먹한 단어가 어디 있을까.역사책으로 보던 그 만주 벌판의 이야기와 함께 들려오던 그 단어가 주는 무게는 왠지 모르게 수레바퀴를 힘들게 하는 짐처럼 묵직하다. 역사의 한 자락으로 생각하던 그런 공간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이 었을까. 처음 백두산을 올랐던 90년대 초 어느 날, 2차선 도로를 따라 달리던 차량이 멈춘 것은 백두산 어느 기슭의 호텔이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때만 해도 유일한 숙소이자 정상에 오르는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했었다. 주변의 풍경에 감탄하고 있을 때 슬그머니 숲으로 들어가 자연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모를 정도의 거대한 나무는 그늘을 만들다 못해 숲을 장악하듯 버티고 서 있었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순간 같은 것이랄까. 여기가 백두산이구나 나도 와 보는구나. 그날 작은 지프를 타고 백두산 정상을 올라 천지를 보았다. 그리고 그 천지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만든 폭포를 처음 보았던 숲 근처에서 만났다. 그 짧은 여운이 오랫동안 백두산의 모습으로 남았었다. 오르고 내리는 동안 바라본 백두산 기슭은 온통 야생화 천지였다. 바닥에 붙은 듯 피어난 꽃이 주는 색은 천상의 화원이다.
그 후 다시 한번 백두산을 찾았을 때에는 곧장 자동차를 달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을 올랐다. 천지까지 가는 길도 데크가 깔려있었다. 그러나 숲으로 들어가는 기회는 다시없었다. 관광지로 변한 백두산에서 느끼면서 그 첫 감흥마저도 사그라 진 기분 같은 것이랄까. 그것이 마지막 백두산 방문이었다. 그래도 천지에 흐르던 맑은 기운과 순시깐에 천지를 감싸안던 안개의 흐름이 주던 순간의 변화, 산 능선에 피어난 야생화의 화사한 빛깔은 아직도 여운처럼 남아있는 것은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