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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Oct 11. 2022

(칼럼)마음으로 몸으로 다가가는 예술

화성시문화재단  기고


화성시문화재단  매거진<화분>,

뉴스레터 10월호  칼럼입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얼마 전 열린 ‘키아프와 프리즈’에 엄청난 인파가 몰리고 고가 작품들이 판매되면서 우리 국민이 미술품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를 보여주었다. 미술품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미술시장 조사 결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조사를 시작한 2009년 29천여 점이던 것이 2020년에는 35천여 점으로 늘었다. 물론 여기에는 사인 간의 거래라던가 하는 많은 부분이 누락되어 실제 거래는 더 많을 것이다.


작품을 찾는 실 소유자의 증가라 볼 수 있다. 앞으로 미술 시장의 대중화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미술품에 대한 관심과 호응이 커지도록 특정 계층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미술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미술시장이라는 거대한 틀이 지속해서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술품에 대한 일반인들의 거리감을 줄이고 투자가 아닌 감상의 대상으로 접근하게 해야 한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 전문가적 지식이 필요할까? 어쩌면 그런 지식 없이 순수한 자기감정에 따르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신이 몸으로 느끼는 감각적 반응이기 때문이다. 그 감각이야말로 천연의 세포다.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여 긍정과 부정으로 좋은지 나쁜지 선별한다. 아무 기준점이 없기에 객관적 기준이 마련되는 것이다. 


미술, 음악, 무용, 체육 등 모든 부문이 그렇다.     

그림을 본다. 책에서 자주 보던 명화는 그냥 보기만 해도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좋을까. 의식적인 판단 앞에 있는 기존의 지식이다. 그러나 전혀 모르는 작품을 대할 때의 그 기준은 자신의 감각적인 판단으로 선별한다. 대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다. 판단 기준은 가슴으로 다가오는 전율이 되기도 하고 눈을 호강시키는 자극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음악을 듣는다. 음률을 외우고 그 음악가를 알아야 즐기는 것이 아니다. 노래는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그 음률 자체가 좋고 소리가 좋아서도 듣는다. 좋으면 몸이 들썩인다. 그것은 몸이 반응하는 반사적 작용이다. 소음인지 음악인지는 자신이 지닌 감각의 반응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다.    

무용을 본다. 화려한 동작, 화려한 무대 장식 등 시선을 사로잡는 많은 요소가 있을 것이다. 무용 동작이 잘되고 못함을 판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자신이 느끼는 무대 위의 풍경, 그것들이 주는 감동은 무엇을 통해 얻느냐에 관심이 필요하다. 화려한 움직임 속에 인체의 움직임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고 유연한 몸동작을 통한 탈 인간화된 모습에 감동한다면 그것이 무용을 즐기는 방법이다. 

스포츠 또한 같다. 내가 잘하는 것도 좋지만 선수들의 화려한 기술, 열정적인 움직임에 감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팀, 선수의 승패를 떠나 그 경기 자체를 즐기는 모습에서 스포츠를 더 사랑하고 자신에게도 긍정적인 힘이 되어줄 것이다.      


예술은 온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감싸 안을 때 내 마음에 에너지가 충만해진다. 자신이 잘하고 즐기지는 않아도 보고 듣고 응원하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면 그것이 예술을 감상하고 접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반응은 한국미술재단에서 전국 초등학교에 미술관을 만들어주는 ‘학교 안 작은 미술관(그림 설치, 화가들 미술수업, 아이들과 화가 합동 전시회)’ 사업을 추진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학교 빈 곳에 그림이 걸리자 아이들의 반응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림에 관심이 생기고 그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그 공간에서 서성이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인식된 예술에 대한 관심과 경험은 커가면서 아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한다. 또, 내가 근무하던 공공청사 복도를 갤러리로 꾸미고 미술작품을 설치하자 직원뿐 아니라 외부 방문자들도 공간이 달라졌다고 한다.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회색 벽 일색의 공공청사에 몇 개의 미술작품이 걸리면서 일으키는 변화다. 청사를 방문한 어느 시민은 그림이 마음에 든다고 작품 구입을 문의하였다. 그동안 억눌려있던 예술에 대한 욕구가 작품을 만나 활활 타오른 것이다. 


그림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는다. 

그림을 몰라서 보러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좀 더 자기 확신을 가져야 한다. 전문가처럼 자신의 느낌과 감정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냥 즐기는 것만으로 나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예술을 즐기는 것에 관심을 가져 보자. 내 안에 잠재된 예술 기질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예술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다가갈 때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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