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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Jan 02. 2023

친절한 현대미술을 기대한다

예술이 왜 어려워야하나.

작품? 암벽코스

2023년 새해를 시작하며

브런치글은 어떻게 시작할까 하다가

올해는 난해한 어려움보다

조금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전시를 생각해 보았다.


왜 미술은 어렵다고 하는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아서 알 수 없는데 들어서도 알 수 없으면 더 어려워진다. 현대 미술現代美術은 전통적인 묘사의 방법을 벗어나 추상을 추구한다. 그만큼 난해하다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설명이나 전시 해설이 없으면 무엇인지 조차 알 수 없는 작품도 있다.


전시장에서 그냥 쳐다만 보고 큐레이터의 말에 고개만 끄덕여야 한다. 이것이 현대 미술이라면 일반 관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와 미술관을 위해 필요한 작품이 아니겠는가. 1917년 뒤샹이 남성 소변기로 만든 <샘>이라는 레미 메이드 ready-made 작품으로 그간의 미술과는 전혀 다른 미술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후 너도나도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과제를 숙제 내듯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더욱이 전시 안내 홍보물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용어로 범벅된 것도 많다. 아예 아무런 설명조차 없어 그냥 바라만 봐야 하는 관객은 바보가 된 느낌이다.


아는 채 하려면 뭔가 있어야 하는데 보이되 보이지 않는 그림자 같은 불분명한 작품으로 전시하고 있는 느낌이다. 조금 더 친절한 현대 미술이 될 때 관객도 예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깊어갈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처럼 어려운 예술만 하다가는 꽃 그림과 추상이라는 두 가지로 분리되지 않을까. 작품은 작가의 경험과 철학, 상상을 통해 이루어진 창작물이다. 관객과 작가를 연결하는 전달 과정의 매체가 부실(어려워)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설치미술이든 조각이든 회화작품이든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관객에게 이해를 요구하는 듯한 작품이 되지 말아야 한다. 작가의 철학과 개성이 있어야 한다.


작품을 통해 분석하고 해석하는 여유가 있으려면 제대로 된 핵심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스무고개를 넘는 숨바꼭질을 통해서라도 알 수 있는 것이 예술이다. 그 실마리를 어디에 두었느냐는 쉽게 찾아야 하지 않을까. 복잡한 현대사회에 너무 복잡한 예술만 지향하면 어느 순간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칠 것이다. 작가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는다면 자기만의 몽상에 그치는 작업이 될 것이다. 혹, 미래의 누군가 그 가치를 인정하여 위대한 미술가로 추앙받을지는 모르겠다.


현장에서 설명이 어렵다면, 요즘 유행하는 바코드 인식을 통하면 필요한 관람객들은 어느 정도 소화가 되지 않을까. 그 정도의 친절은 베풀어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보고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야 관객의 탓으로 돌리면 될 것이다. 청테이프로 바나나를 벽에 붙여 전시하고 또 그것을 먹는 행위조차도 예술이라고 하지만,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 때 가치는 존중받는 것이다.


어느 책자에 실린 전시 작품 설명을 보다 보니 작품도 어려운데 설명조차 이해가 어렵다. 미술사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아예 볼 필요도 없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림을 좋아하는데 더 좋아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생각하는 시간이다. 작품을 전시하는 작가의 의도된 행위는 그 의미가 전달될 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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