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미술 작품은
관객을 즐겁게 하고 슬프게 한다.
향촌에서, 목판화(45*25), 김준권, 개인소장
보아서 즐거움이 있는 작품. 작가의 혼이 스며든 창작 노력이 엿보이는 그런 작품이 좋은 작품이다. 관객이 작품을 통해 작가와 대화를 나누고 마음의 치유·평안을 찾게 하며, 영감을 얻는 살아있는 작품이 그런 작품이다.
멋을 추구하는 것도 모양을 추구하는 것도, 특이함을 추구하는 것도 아닌 모방과 변형을 통해 작가가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와 관객의 융합. 소통을 통해 작품은 완성을 이룬다.
모방이지만 원작보다 더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모방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물로 탄생하는 것이다. 작가는 자연과 사물, 그리고 다른 작가들의 창작물을 통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영감을 얻고 완성하기에 서로 모방하고 변형하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느 화파는 어떤 성향이라고 하는 것도 후대에서 만들어낸 하나의 분류일 뿐이다. 어찌 확연한 잣대를 들고 어느 작가는 어느 화파라고 할 것인가. 조각이든 회화든 예술작품은 인간의 감성을 사로잡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미치게 하려고 제작하는 만큼 그 파급력은 매우 크다. 그러기에 작은 작품 한 점이 관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인간의 일생을 바꿀 수도 있을 만큼 큰 파괴력을 지닌다.
수많은 예술가의 작품이 일부는 돈으로 환산되고 일부는 그 작품의 존재가치조차 모르고 사라져 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가장 큰 이유는 작가와 관객의 소통 부재에 있다. 감동을 전하지 못하는 작가의 작품은 혼이 없기 때문이다. 관객은 그런 작품을 만들 자질을 지니지는 못했지만, 그 작품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작품의 가치는 관객의 선택으로 좌우되며, 그 역사성 보존성도 함께 공유되어간다. 그 공유의 경제가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고 관객과 작품의 연관성을 더 깊이 끌어들이게 되는 것이다. 좋은 작품은 관객을 즐겁게 하고 슬프게 하며 심장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오랫동안 보아도 질리지 않고 감흥을 준다. 작가와 관객은 작품을 통해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