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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Jan 23. 2023

정선 가리왕산 추억 찾기

가리왕산 케이블카

설날 가리왕산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에 올랐다. 1.7킬로미터의 거리를 20여 분에 오른다.  눈이 쌓인 풍경은 겨울 정취를 그대로 전해왔다. 예전에 등산을 하면서 상봉에서 중봉을 거쳐 이곳 숙암리 골짜기로 내려온 적이 있다. 그때도 겨울 산행을 했었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니 더 감회가 깊다.

흐린 날이었지만 저 멀리 있는 마을까지 보인다. 가족단위로 찾은 사람들이 많다.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계절을 느낄 수 있겠다. 정상에는 데크를 깔아 편리하게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까지 오를 수 있는 케이블카 중  하나다. 그만큼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가리왕산은 태백산맥의 중앙부로 1561m의 주봉을 중심으로 1433m 중봉, 1381m 하봉을 가진 큰 산이다. 면적은 정선군과 평창군에 걸쳐있다. 주변에는 북동쪽에 백석산(白石山 1,365m), 서쪽에 중왕산(1,376m), 남서쪽에 청옥산(靑玉山 1,256m)  등 높은 봉우리들이 나란히 있다. 가리왕산은 옛날 맥국貊國의 갈왕葛王이 피난하였던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숙암리宿岩里 지명은 갈왕이 피난하면서 바위밑에서 잠을 자서 생겨난 지명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오대산에서 시작하는 오대천五臺川은 나전리에서 조양강朝陽江을 만나 한강으로 흘러간다. 그 오대천 줄기는 가리왕산 줄기가 만들어낸 수많은 계곡의 물줄기를 받아들여 흘러간다. 특히 5월에는 오대천 계곡을 따라 철쭉이 아름답게 피는 곳으로 유명하다.

  

산이 크고 높으니 마을은 계곡을 끼고 형성되어 골짜기마다 집들이 산재해 있다. 화전민이 정리되기 전인 70년대 까지는 산중턱까지 곳곳에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화전민촌 정비가 시작되면서 일부는 떠나고 일부는 마을 한쪽에 독가촌이라는 이름으로 건물을 지어 이주했다. 마을에서는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쓰고 풀을 베어 소를 길렀다. 맑은 물을 선사한 오대천에는 메기, 지름쟁이, 탱가리 등 비닐 없는 고기와 꺽지, 쏘가리, 송사리 등 비닐 있는 고기까지 다양한 물고기가 있어 부수적인 영양 보충의 수단이 되었다.


그런 천연림도 부분적으로는 용탄, 회동 등은 탄광이 개발되어 곳곳이 파여 나가기도 했다. 80년대쯤에는 산림관리라는 목적으로 산 8부 능선까지 임도林道가 생기며 몇 년 동안은 산이 헐벗은 것처럼 붉은 땅을 드러내고 장마철이면 흘러내리는 고통도 감수했다. 그러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수렵장을 만든다고 산중턱에 철책을 둘러치기도 했다.


정상에서 바라본 상봉, 중봉


가리왕산이 높고 울창한 산림을 지녔지만, 사람들의 귀에 들리기 시작한 것은 2018 평창 동계올림이 열리면 서다. 북쪽을 바라보는 경사지로 적지가 여기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2018 동계올림의 경기장 중 하나로 활강스키장이 가리왕산 중봉 쪽에 만들어졌다. 주민들은 조금 더 발전할까 하여 두 손 들어 환영했고 최선을 다해 경기가 유치되고 치러지도록 도왔다. 지역의 일부분이지만 숙암리는 새로운 호텔로도 들어서면서 관광지로 변모하는 듯한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행사가 끝나자 그 경기장은 사라졌고, 정상으로 오르는 케이블카를 철거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주민들은 분노했다. 올림픽을 통해 무언가 지역 발전을 기대했는데 환경보전이라는 이름으로 케이블카를 철거한다고 하니 주민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마을에 오랫동안 사람들은 특히 그 산을 잘 안다. 산 중턱까지 많은 부분이 조림지역도 있고 예전에는 화전민이 살았던 곳도 있으며, 산에 임도林道를 내고 수렵장을 만들고 철책을 둘러치는 일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런 행위에 대해 그동안 누구도 환경훼손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왜 경기를 치르고 보존해도 될 케이블카마저 환경을 들먹이며 철거하려 하는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런 갈등을 겪으며 2023년 1월부터 케이블카 운행을 시작했다. 주민들의 숙원이 조금은 풀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겨우 케이블카가 운행되는 것이다. 주변을 정비하고 관광자원으로 만드는 노력이 남았다. 자연을 바라보고 휴식을 취하고 먹거리를 즐기며 도심을 벗어난 사람들에게 여유를 주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 산은 그대로인데 사람만이 이랬다 저랬다 한다.


산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산의 아픔을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자. 가리왕산은 수많은 이들의 추억과 안식의 공간이다. 자연을 가꾸고 보존하고자 하는 것은 그곳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곳에서 삶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느 누구의 일방적 정책이나 생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할 것이 아니다. 그곳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견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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