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색(Blue 靑色)은 강열하다. 밝고 선명한 푸른색이 주는 경쾌함과 함께 깊은 우물에 빠진 파란색 하늘처럼 깊이를 모르게 하기도 한다. 그런 청색을 사용하여 표현한 자연은 더 깊고 깊다. 너무 깊어 빠지면 나올 수 없는 미지의 계곡 같다. 한마디로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는 그 강열함은 태양과 반대로 깊은 심연深淵을 느끼게 한다.
장전리폭포 2, 91*72센티, 혼합재료, 2022
조광기 작가의 청색 작품은 달빛 아래 풍경이다. 아마도 만월滿月-둥근달에 비치는 깊은 산과 계곡의 풍경 그리고 그 속의 나무와 돌까지 강렬하게 다가오는 심상心像을 나타낸 것 같다. 그래서 더 웅장하고 더 굳건하고 더 활력 넘치는 기운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작품 '장전리 폭포 2'는 깊은 계곡에 흘러내리는 폭포 모습이다. 아마도 강원도 정선과 평창 경계에 있는 장전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가리왕산(1561미터)이라는 큰 산줄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맑고 시원하다. 산이 높으니 계곡도 깊고 수림이 울창하다.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작은 물줄기는 오대천으로 흘러들기까지 긴 줄기를 타고 흐른다. 크고 작은 폭포를 만들며 풍경을 만든다. 작가는 그런 깊은 심산의 폭포를 담았다.
아주 작은 폭포를 크게 나타내었든, 커다란 폭포를 화폭에 담았던 그 느낌은 크고 웅장하다. 조용한 달밤에 흘러내리는 폭포수 소리는 얼마나 요란할 것인가. 명창이 온 힘을 다해 소리를 뽑아내도 그 소리를 이기지 못하듯이 그 광대함은 모든 것을 삼키고 남음이다. 그런 폭포가 하나의 화면에 가득하니 들어섰다.
청색 풍경은 모든 것을 잠들게 할 정도로 묵직하고 강압적이다. 하얀 물줄기가 그 사이를 비집고 흘러내리는 모습은 마치 그 고요의 정적을 뚫어 버리겠다는 심정이 아닐까. 청색과 대비되어 더욱 하얗게 빛나는 물줄기는 이미 살아있는 생명체다. 힘찬 울림으로 살아있음을 알리고 조용히 흘러갈지언정, 이미 한번 웅크리게 한 정적은 쉽게 깰 수 있는 것이 없다.
작가가 표현하는 청색은 모든 것을 잠재우는 색이다. 푸른 하늘, 파란 바다가 아니라 적막을 감싸 않은 달빛 아래의 고요다. 아니 한낮에 머금은 푸른 하늘이 달빛에 더욱 싸늘하게 식어가는 그런 색이다. 왜 작가는 이런 색을 썼을까. 강렬함은 무게를 견디지 못하게 한다. 어느 누가 저 푸른 밤기운을 품어 안을 수 있을까. 시리도록 푸른 청색의 풍경에 깊은 곳에 잠든 의식이 깨어난다.
어느 날 문득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작품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역할을 할 것 같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밤이지만 어디선가 보는 이가 있는 그런 광경, 내 마음의 깊은 곳까지 스스럼없이 다가와 어루만져 줄 것 같다. 달빛에 스며든 그림자 마냥 내 가슴 저 깊은 곳까지 짙은 청색 물감이 칠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