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아 과거의 모습을 본다. 기록이라는 매체의 훌륭한 장점이다. 글, 사진, 영상 모든 것은 과거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세상을 알기 전의 모습부터 내가 가보지 못했던 장소까지 누군가의 경험과 생각을 통해 보는 것, 알게 되는 것이다. 영월에 있는 동강사진박물관에서 그 기록의 자료를 통해 세상을 다시 보았다.
'한국을 바라본 시선'이라는 주제로 박물관소장품전이 열리고 있다. 특히 전쟁의 상처가 있던 50년대의 사진 속에서 아픔과 함께 웃음도 있고 삶의 고단함도 함께 담겨있는 모습은 예전 어른들께 들었던 이야기의 한끝 같았다. 당시에 저런 모습도 있었던가 싶을 정도의 신문화新文化, 유행을 즐기던 사람들과 어느 한쪽에서는 그런 꿈조차 꾸지 못하고 살지 않았을까 하는 모습이 대비됨은 고단함이었다.
전시 풍경 촬영, 20230228
웃음과 해학, 행복과 고통의 순간 모두 그 찰나의 모습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 이형록 작가의 녹번동 아줌마, 1957년(우측 사진)'은 달동네를 배경으로 물건을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걸어가는 여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조환 작가의 작품에서 본 여인의 모습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다르지만 같은 두 작가의 시선은 하나는 사진이라는 기록성으로 하나는 마음에 담긴 삶의 의지 표현처럼 그림으로 담긴 것이다.
조환 작가의 작품은 아련함이 묻어난다. 큰 화면에는 전체 화면의 1/2을 차지하는 여인과 함께 여러 사람의 얼굴이 배경처럼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언 듯 수묵 느낌을 주는 작품은 추억과 기억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 준다. 기록에 담았던 그 모습을 통해 삶의 모습을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MZ세대는 생각할수록 조차 없는 당시의 상황을 그의 할아버지 세대는 부분적으로 격기도 하고 그 삶을 살아온 세대다. 전혀 다른 세상을 보고 살아가고 또 배우는 과정을 우리는 언제나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민초-한국인, 96.5*96.5, 조환, 개인소장
역사 속 이야기가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손자가 배우고 이해하며 몇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저 여인의 모습이 우리 선조들의 모습이었고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는 사실이 역사다. 그리고 그 세대를 함께 했던 사람들의 초상이 배경처럼 함께 보인다.
작품 속 여인은 작가가 생각하는 누구이기도 하고 시대의 흐름을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작가의 시선을 통해 나는 당시 사회의 모습을 본다. 작품 속에는 지난 시간이 담겼고 그 속에는 내가 있기까지 지나온 세월의 과정이 녹아있다. 작품을 보면서 시대를 느끼고 그림이 주고자 하는 의도를 생각해 본다.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작품의 탄생과정에는 이야기가 있다. 작가의 철학 같은 믿음도 있다. 작품 속에서 이야기를 찾으며 그 의미를 되새겨본다.
국어사전에 민초民草는 ‘백성을 질긴 생명력을 가진 잡초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민초는 다수의 사람들을 상징하는 단어다. 고단한 삶과 생명 그리고 힘의 표현이다. 여인의 모습을 통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그 모습은 사실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 시대의 대변자적 모습으로 태어난 소외된 인물의 상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은 가공되었거나 진실일지라도 그 모습에는 모든 이들의 얼굴이 투영投影되어 있는 것이다. 표정과 의복, 행동에까지 어느 하나의 관점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삶이 담겨있다.
민초라는 말이 주는 긴장감, 무거움은 다른 어느 단어에서도 찾기 어려운 무게감을 지닌다. 무엇인가를 대신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오직 민초라는 단어를 통해 각박한 세상살이를 영위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것은 상징이다. 당시 살아가던 모든 이들을 대변할 수 있을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 무게감이 작품을 더 빛나게 한다.
작품은 우리의 의지, 나아가는 삶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 삶을 개척하고 이겨낸 근성을 보여준다. 참혹한 시련을 이겨내고 암흑의 어둠을 뚫고 아침을 맞이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 삶의 의지는 어디에 왔을까. 그것은 어쩌면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 함께 이겨내는 힘이 아닐까. 작가는 무거운 주제와 작품의 분위기를 여인의 어깨 위 뒷부분을 파란색으로 채색함으로써 삶의 무게 속에서도 빛의 희망을 암시하는듯하다. 표정과는 달리 배경이주는 청량감 같은 느낌은 그 끝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어느덧 다가와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희미하게 밝아오는 아침, 여명黎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