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보면 변해가는 시간의 흐름이 보인다. 어제가 다르고 오전과 오후가 다르다. 풀이 자라고 꽃이 피고 새들의 소리가 달라진다.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어느 순간에 드러나고, 어제 보았던 것이 오늘은 사라지고 없다. 잠시 관객의 시선으로 자연이라는 무대를 둘러본다. 넓은 곳 전부를 볼 수 없으니 부분을 잘라보고 부분을 확대해 내가 더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이곳이 다르고 저곳이 다르고 그렇지만 자연이라는 이름아래 같은 듯 다른 모습을 지닌 것에 감탄한다. 언제 자연을 이렇게 가까이서 바라보았는가. 풀숲에서 기어 나오는 개미 한 마리가 지나는 길이 궁금증을 일으키듯이 떨어진 나뭇잎 하나만 들추어도 온갖 세상이 있을 것 같다. 자연이 지닌 신비함이다. 그 묘함에 때로는 마음을 놓는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오늘 보였으니 어딘가에 살며시 저장해 놓았다 다시 꺼내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사진에 담아 그 시간을 기록하고자 하지만 언젠가는 그 기록마저 잊혀 버리지는 않을까. 결국 마음이라는 것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므로 기록과 새김을 같이해야 한다. 오늘 아침에는 얼마 전에 포장한 아스팔트 길 위에 쑥이 자라는 것을 보았다. 어느 틈에 끼었다 피었을까. 한여름의 뜨거운 시간에 견디어 낼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생명의 신비함이다.
아침햇살이 없었다면 볼 수 없었을 것,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보지 않았으면 보지 못하고 밟아버렸을 풀이다. 그런데 오늘 만난 그 아련한 풀 한 포키가 왜 마음을 두드릴까.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잡초의 끈질김을 보여주는 것일까. 문득 꽤 오랫동안 조직 바깥에서 지내는 나 자신의 모습이 대비되기도 한다. 내가 속했던 그룹에서 벗어나있는 듯한 느낌 그것은 외로움 보다도 무리라는 집단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다. 잊힘이다. 처음엔 무리를 벗어남이 즐거움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무리가 나를 잊었거나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동물이던 식물이던 집단을 형성한다. 그 무리의 힘으로 주변을 장악하고 자신의 터전을 만드는 것이다. 때로 외로이 떨어져 나가 새로운 무리를 만드는 것처럼 세상은 혼자 보다는 무리를 선호하는듯하다. 어느 작가는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잊힐까 두렵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자주 만날 수 없고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의 작품에 대한 믿음과 함께 무리가 가진 힘을 경외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무리를 벗어나지 않으면 자신의 완전한 모습을 바라볼 수 없다.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홀로 서보아야 한다. 무리를 벗어난 풀 한 포기가 새로운 무리를 만들듯 누구나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내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홀로 섰을 때 자신의 힘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