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생명력

환경에 적응하고 견디어 내는 힘

by 흐르는물

설악산 기슭에서 생활한 지 석 달이 되니 주변의 풍경이 자연스러워졌다. 이렇게 오랫동안 자연 속에서 생활할 것이라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처음엔 불편했고 두려움도 있었는데 어느덧 적응이라는 것에 닿았는가 보다.


자연의 무한한 변화에 놀라기도 하지만 그 변화의 한가운데서 생명을 지켜 나가는 것들을 보면은 인간의 삶도 그 속에 존재하는 가치 중 하나일 수밖에 없음을 알겠다. 부러지고 휘어지고 쓰러지면서 자라는 나무의 생명력은 신비로울 정도다. 오늘 아침에는 몇 년도 안 되어 보이는 아주 작은 나무에 솔방울이 맺혀있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작은 나무가 씨앗을 품을 수 있다는 것에 놀랍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신비로운 상황의 연속이다.



생각하건대 저 어린 나무가 솔방울을 만들어낸 이유는 자연에 순응하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언제 꺾일지 모르는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봄이면 모진 바람에 나무가 꺾이고 부러져 나간다. 겨울철 내내 추위와 눈의 무게도 견디어내었던 나무들이 봄이 되면 더 안정적일 것 같은데 나무에게는 더 위험한 순간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봄이 되어 수분을 잔뜩 머금은 나무가 강한 봄바람에 대응하는 것이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 있는 것은 대부분 해송이다. 수십 년은 되어 보이는 나무들이 키가 몇 미터 밖에 안된다. 한해 자라는 나무의 표시가 되기도 하는 나뭇가지의 높이가 길지 않다. 나뭇가지는 바람이 불러오는 반대방향으로 나있다. 아래 가지는 대부분 부러져 나가고 위쪽 2/3 정도만 남아있다. 자연에 적응하며 살아내기 위한 방편일 것이다. 가지 하나를 떨어뜨림으써 나무가 부러지는 것을 방지하고 그 위험한 순간을 넘기는 것이다.


이런 생각도 하여본다. 사람도 저 나무처럼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다면 아무리 어려운 세상살이라도 감히 헤쳐 나갈 것이라고. 저 단단한 삶의 생명력에 누가 도전 할 수 있겠는가라고. 예전 산 정상에서 보았던 누워 자라는 나무들의 모습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끼곤 했었는데 이런 산기슭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암투 같은 처절한 몸부림은 보지 못했다. 그 속에 조금 들어오니 멀리서 보던 아름다움 속에 있는 진실들도 보이는 것이다. 보이되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오늘 아침 작은 소나무가 보여준 생명을 지키는 방법은 실로 새로운 세상을 본 느낌이다. 지금 우리가 준비하는 행사가 결국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그림을 그려가며 만들어 내듯이 용기 내어 가는 가는 의지의 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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