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꽃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흠이 있다. 그 부족한 것을 찾으면 꽃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꽃은 전체적인 조화와 색, 향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껴야 한다. 부족함이 아니라 간직한 것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을 충족하고 있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더욱이 인간의 욕심에 빗댄다면 결코 불가능한 것이다. 99개를 가지고서 1개를 더 채우고자 탐내는 욕심이 일어나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배우고 자신의 것을 베풂이라는 것에서 다가간다면 그 부족함이야 말로 가장 필요한 것이다. 무언가 부족해야 채울 수 있다. 모자라야 가지려는 욕심이 생긴다. 결핍은 부족한 것으로 채워 넣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부족함이 있어 채울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가득 찬 물병은 더 이상 채울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부족한 물통은 그 부족함으로 인해 긴장하고 아껴야 하는 전략을 찾게 된다.
처음부터 비어 있는 것에는 기대할 것이 없다. 그러나 있다고 비워 버리면 아쉬움과 기대감만 늘어난다. 아주 사소한 차이지만 삶에 있어 결핍이주는 것은 많은 격차를 드러내게 된다. 말라있는 솜뭉치는 흡수력이 빠르다. 순식간에 물기를 흡수한다. 그러나 이미 물기에 노출된 솜은 더 이상 빨아들일 여력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배움이라는 것을 여기에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무수한 호기심과 탐구욕이 있는 사람은 말라있는 솜과 같다. 그러나 의지가 부족한 자에게는 물에 젖어버린 솜처럼 더 이상 받아들일 여지가 없는 것이다. 배움이라는 이 간단한 이치 하나가 주는 차이가 삶의 의미를 달리하게 만든다.
주변의 환경에 의해 인성이 바뀐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무엇으로 그 빈 공간을 채우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예술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세상의 모습을 예술을 통해 느끼고 체험하며 스스로 깨닫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비어있는 곳을 채우는 방법 중에 가장 부족한 것이 예술이다. 자신이 느껴야 보인다. 배우고 노력해야 하는 일들 중 하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은 주변환경과 본인의 노력에 달려있다. 어쩌면 결핍이라는 것조차 내가 원하는 것이 있어 더 갖고자 하는 욕심일 수도 있다.
주변환경이 결핍되어 있다면 그 속에 남아있는 생명체는 허할 수밖에 없다. 풍족한 예술의 세계에 젖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 삶 속에 예술이 남아있는 것이다. 우리가 모자라는 것을 채워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결핍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채워야 할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하는 것은 자신의 결정이다. 결핍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다듬을 수 있다. 그것이 결핍이 주는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