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적 글에 너무 민감해하지 말자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영화나 전시를 보고 글을 쓰는 것은 감상의 결과를 남기는 일이다. 한 개인이 느낀 내적인 표현을 글로 남긴 것이다. 거기에는 사실인 것도 느낌의 결과도 있을 것이다. 관찰자의 주관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느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좋은 표현과 날카로운 비평이 담긴다 할지라도 그것은 관찰자의 마음이다. 여기에 나와 조금의 관계가 있다 하여 마음 상할 필요가 없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모두가 다르다. 다만, 누구는 그 감정을 드러내고 누구는 주변을 의식해서 표현을 자제할 뿐이다. 그런 느낌에 반응한다는 것은 자기 주관을 잃어버리게 한다.
예술을 하는 이는 배움이 필요하지만 모든 것에 반응해서는 자신의 길을 가기 어렵다. 누구의 주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자신을 가다듬는 일이 필요하지만 또 어느 순간에는 자신만의 고집으로 뚜렷이 길을 가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것을 잃으면 결국 타인이 요구하는 길을 가게 되고 자신의 길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얼마 전 어느 작가분과 이야기하다가 누군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너무 비판적으로 이야기해서 마음이 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앞에서 대놓고 충고를 해서 자존심도 좀 상했는가 보다. 누구나 그런 상황에서 감정의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자신의 작품에 대한 방향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는 것은 너무 심한 자책이 될 수 있다. 그 당시 그런 충고를 해준 사람이 아무리 영향력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알고는 있지만 어려운 남의 충고와 비판에 자신을 관리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앞에 있으면 좋겠다. 어느 순간이든 선택의 순간에는 자신뿐이다. 주변의 이야기는 참고다. 그 참고용 중에서도 실제 도움 될만한 것들이 얼마나 있을까. 나 이외의 모든 이들이 나에게 긍정일 수만은 없다. 부정 속에도 긍정이 있고 긍정 속에도 부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깨닫는 이치중 하나다. 자신의 일관된 생각이 어느 순간부터는 가장 큰 믿음과 진실일 수 있다.
비판과 조언,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누군가의 객관적이고도 주관적인 바라봄이다. 어제는 맞았고 내일은 다를 수 있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나의 관점에서 대할 것인가 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