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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Dec 15. 2023

그림을 보며 내 마음을 읽는다.

그림을 보는 것은 작가의 생각을 읽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을 통해 떠오르는 감정은 내 마음을 읽는 것이다. 그림 속의 선과 면, 색이 주는 것은 작가가 의도한 작가의 시각이다. 그 속에서 관객은 자신의 눈으로 작가의 그림을 해석한다. 마음의 반영이다. 사물은 자연이다. 인간이 가장 가까이에서 보아온 것이기에 그 속에 투영된 것은 작은 불씨 하나로 전체를 읽어 낼 수 있는 조화로움이 스며있다.


자연을 닮은 것은 날카롭고 네모난 것이 없다. 날카로운 것도 스스로 비켜간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오묘한 현상이자 힘이다. 그 자연을 캔퍼스라는 작은 공간에 끌어들이는 능력 그것이 인간의 눈이다. 그림을 통해 인간은 공감하기도 하고 다른 형태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각자가 지닌 경험과 지식의 차이 그리고 깊이의 격차다. 스스로 깨우치고 터득한 능력의 차이로 인해 같은 것을 보면서 다르게 느낀다.


자연의 이치를 자기만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추상이다. 궁극의 깨달음을 통해 얻었다고 하는 것조차 자연이 준 것이다. 선과 면, 색을 통해 자연 그대로를 가져오기도 하고 일부를 가져오기도 하고 자기가 만들어낸 감정의 선과 면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 어느 누구는 자연 풍경 속에서 그 오묘함을 찾고 누구는 삶의 과정에서 받은 느낌을 사물의 형태를 통해 얻기도 한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작은 것에서 큰 것까지 중첩되고 중첩되어 나타난다.


어떻게 그것을 드러내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누구는 글로 나타내고 누구는 그림으로 나타낸다. 그것을 보는 관객은 그 속에서 차갑고 날카로운 비수도 찾아내고 부드러운 자연을 품을 느끼기도 하게 된다. 감정의 교류다. 자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상대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중심에 이른 것이다.


조각, 그림, 음악 등 예술이라는 것은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만 스스로를 감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림 앞에서 음악을 들으며 자연을 바라보며 깊은 감상에 빠져든 적이 있다면 이미 자신을 읽어내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어제와 오늘의 감정이 같은 듯 다르듯이 사물이 매번 달라지는 것은 마음이 요동치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추상화의 난해함은 머리를 아프게 한다. 작가조차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 자체가 추상표현이라는 말로 넘어간다. 그렇다 그것조차도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으니 설명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그것에서 얻는 것이 있다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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