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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Feb 23. 2024

저 땅은 영원할까? 사라지는 농촌

쓸모없는 땅이 되어도

마당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산과 논 밭이다. 앞집 지붕이 살짝 보인다. 농촌풍경이다. 그 예전 마당은 흙이었고 온갖 곡식과 땔감이 쌓여있는 공간이기도 했는데 지금은 자갈과 잔디가 깔려있다. 농촌이지만 농사를 지을 사람이 떠나가고 억지 농부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밭이 있지만 직접 농사를 짓기에는 부담스럽다. 기술도 없고 육체적으로 힘들다. 농촌 태생이지만 시내에서 자라 농촌을 잘 모른다. 주워들은 몇 마디가 전부다. 그런데 땅은 대물림이 되었다. 부모가 농사를 지으면 자식도 당연히 농사를 지어야 하는 대물림이 이 나라의 법이다. 땅을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는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면 농지를 구입할 수 없도록 해 놓았기 때문이다.


농촌은 고령화되고 농사를 지을 인력은 줄어드는데 법은 점점 더 강화되어 농사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규제로 묶어놓았다. 농사를 지을 수도 팔 수도 없는 땅을 가지고 자식은 세금만 내고 있다. 어느 순간 세금낼 돈이 떨어지면 이 땅은 국가로 귀속될지도 모른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정부에서 벌금을 때리기 때문이다.


옛 어른들은 땅을 바라보면 흐뭇하다고 했는데, 자식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한숨만 나온다. 부모는 이런 상황이 올 것인지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도시로 나가 직장을 잡으라고 성화를 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이 들어 고향을 찾아 여가를 보내려 하지만 삶이 이미 도시에 물들어 그것도 여의치 않다. 벌써 이웃집부터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정이라는 추억의 공간이 삭막함으로 변해있는 느낌이다.


고향땅에 정착할까 아니면 살아온 도시에 그냥 머물 것인가 얼마동안은 고민해 보아야 하겠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저 남아있는 농토를 짊어지고 갈 수도 없는 상황에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이 깊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벌금도 안물고 내 것으로 그나마 존치할 수 있는 방법은 나무를 심어 놓는 방법밖에 없을 듯싶다. 다른 작물이야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가는 과정에 손이 많이 가고 돈도 많이 들기 때문에 하면 할수록 돈을 까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나무는 차츰 조금씩 심어 나간다면 한꺼 번에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심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농촌은 숲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무슨 나무를 심든 풀이 자라고 동물들이 오가면 푸르게 자라는 숲이 있어 좋을 듯도 하다. 그렇지만 사람은 어디로 갈 것인가.


농촌의 땅은 사려는 사람도 없는데

몇 걸음 떨어진

도시 땅은 돈이 없어서 살 수 없으니 이런 모순이 어디 있는가.


법이라는 규제로 옛날의 자갈밭 땅은 금덩이로 변하고, 과거의 옥토는 자갈밭도 못하게 변하였다. 산속의 땅은 규제로 묶이고, 들판의 넓은 땅은 풀어 아파트를 만들면서 농지 보전을 외치는 희한한 세상에 살고 있다. 사람이 떠난 공간에 빈집이 을씨년스럽게 서있다. 22년 기준으로 농촌의 빈집이 66천 가구 정도 된다고 한다. 도시 어촌을 포함하면  두 배는 될 것이다. 일본은 1천만 가구가 빈집으로 2038년에는 31%가 빈집이 될 것이라는 기사도 있다. 인구가 줄고 늙어가면 도시도 낡고 을씨년스러워진다. 공간을 남아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할 것인가 고민할 때다. 소련의 다차를 떠올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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