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기획하고 보여주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과 협력이 필요하다. 그 결과물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는 주제의 명확성에서 드러난다. 바로 조화다. 주제와 전시의 방법, 전시물 그리고 설명이 일체가 되었을 때 나타난다. 그것을 통해 전시 참여자나 관객이 호응하고 화답하며 그 의미를 완성시켜 나간다. 그것이 안 된 경우 관객은 흥미를 잃게 된다. 현대 미술이 이해하기 어렵다고는 하지만 아주 작은 부분에서 관심을 가지게 만들기도 한다. 쉽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매력적인 것이 보일 때다.
춘천예술촌 작가들의 기획전이 열리고 있어 다녀왔다. ‘내일을 보는 오늘’이라는 전시주제는 그래픽 이미지를 통해 전시 홍보물 디자인을 했다. 포스터 자체만으로는 전시홍보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듯싶다. 3주에 걸쳐 전시를 하는 파격적인 기획전이다. 예술촌에 입주한 작가 9명이 참여했다. 아마도 작가들의 2년간 작업 과정을 통해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전시가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전시장 첫 입구 벽에 설치된 전시감독의 글을 읽으면서였다. 한번 읽고 나서는 무엇을 전달하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전체 공간의 1/3을 막아서 아치형 입구 9개를 만들어 벽을 세워놓았는데 웅장하다는 느낌 이외에 어떤 의미를 담기 위해 이렇게 큰 구조물을 세웠을까 하는 의문이 앞섰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9명의 작가에게 다가가는 입구를 상징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특정작가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공간이 나타난다. 일반적인 전시장과 큰 구별이 안된다. 거대하게 출입구를 만든 의미가 작아진다.
여기서부터 전시 개념과 전시 의도가 더 혼란스러워진다. 거대한 아치가 입구를 가로막고 그 구조물을 통해 안쪽으로 들어간다는 것 이외에 특별한 것이 없다. 안쪽은 작은 구역을 나누듯 작가별 전시물이 설치되어 있지만 그 작가의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이해가 어려웠다. 작품을 보여주는 것인지 작가의 작업과정이나 그 어떤 것을 아카이브 하기 위한 것인지가 불명확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작품전시가 주도 아니고 작가의 작업과정을 보여주는 그런 전시가 주도 아닌 어정쩡한 전시 형태로 보였다.
전체 전시공간의 분위기는 넓은 공간이 꽉 찬 느낌이 아니라 무엇인가 빠진듯한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입구에서 받아 든 전시 홍보물을 들여다보았다. 작가 개개인에 대한 설명은 전시감독의 글만큼이나 어렵다.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분명 작가의 작업방식이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 같은 데 외국어를 번역기에 돌려놓은 듯 문맥과 단어 선택 하나하나가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면 문맥마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와 문장으로 쓰여있다. 왜 그랬을까.
그런데 자세히 보니 9명의 작가를 5개로 분류하여 시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음이 보인다.
. 이상향과 지역성, 기록과 아카이브의 시간 ; 2명
. 시간에서 공간으로, 풍경화한 흔적 ; 2명
. 작가로서의 삶과 일상의 시간, 그 관계성의 탐구 ; 2명
. 예술의 시간성, 매체와 표현을 중심으로 ; 2명
. 철학적 시간의 규명을 위한 다학제적 접근 ; 1명
관람객에게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성한 홍보물이 미술사를 읽듯 난해하게 쓰여있다. 더욱이 그것을 이해했다고 치더라도 묶인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여기서도 인위적으로 묶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작품을 보면서 더 강하게 다가왔다. 처음부터 전시 연출 전체를 이해하고 본다면 모를까 너무 어렵다. 혹시 아카이브가 목적이었을까? 과다하게 사용된 외래어부터 학술적인 용어들까지 일반 관람객이 읽어보고 전시를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안내 자료이자 전시다.
* 안내 홍보물에 사용된 단어 일부
. 다학제적 . 무작위성 . 최소주의 . 일상성 . 위상학적
. 양가적인 . 통각적 감각 . 비유기체적 . 습합 . 다층적이고 촉각적인
어쩌면 9명의 작가 방을 각각구성하여 관람객이 그 출입문을 통해 들어가도록 하고 작가에 대해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 놓았더라면 더 좋았을 수도 있었을 듯싶다. 그것보다 전시 자체를 별도 공간인 예술촌에서 하면 어땠을까. 각자의 작업 공간을 전시장으로 만들고 작가와의 대화시간도 가졌다면 좋았을것 같다. 홍보물을 보면 한두 명의 큐레이터가 기획한 것이 아닌 전시감독까지 두면서 진행할 정도로 정성을 들였는데 그 결과 치고는 너무 초라해 보이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무언가 알맹이를 놓치고 있는 듯한 것처럼 느껴진다. 소위 요란하기는 한데 볼 것도 느낄 것도 부족한 허상만 가득 채운듯한 전시장을 다녀온 기분이다.
분명 전시를 준비한 사람은 자기 철학을 담아 획기적인 전시구성을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다만 보는 이의 관점이 다르다. 이번 전시는 실제 구성된 보여줄 작품보다 의미 전달을 위한 부대 재료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한 9명의 작가를 제대로 드러내는데 보이는 것에는 실패한 듯하다. 기획과 전시연출에 거품을 없애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제목에서부터 홍보물의 어려운 문장, 그리고 작품 설치까지 조금 더 정교한 분석과 실행이 필요하다.
기획자의 전문지식과 능력을 뽐내려는 듯 한 현학적 衒學的인 문체를 보는 전시에서 주민들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할 수 있을까. 미술관이나 비엔날레 같은 전시라면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기초자치단체 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전시에서까지 공허한 메아리를 듣게 만든 것은 전시방향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재단 자체에 전문 학예사(큐레이터)가 없는 것도 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커다란 박스를 열면 포장지로 가득차고 다시 작은 박스 하나가 나오는 배달상자 같은 과대포장의 모습을 여기서 보는것같다. 한번쓰고 버려지는 저 커다란 구조물이 왜 필요했을까. 의문만 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