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마당에 멍석을 깔고 놀았던 추억이 있다. 그 멍석은 놀이 공간이기도 했고 농작물을 말리는 역할도 했으며 때로는 가족의 공간이기도 했다. 한여름 저녁에는 그 위에 밥상을 차려 멀찍이 모깃불을 피우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밤하늘을 보면서 시원하게 식사를 했다. 기억 속의 추억이다. 멍석은 짚으로 만든다. 둥근 멍석은 원을 그리며 빙빙 돌아 짜여 있었다. 하나로 연결된 선은 새끼줄처럼 길게 풀려나가며 문양을 만들었고 그것 자체가 보는 즐거움이었다.
조미화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그 멍석의 문양이 떠올랐다. 그리고 밭갈이가 끝난 이랑의 등줄기를 보는듯한 착각에 빠졌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땅의 무늬고 멍석의 무늬였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친근한 이미지였던 것이다. 그 속에는 다양한 생명이 숨 쉬고 있었다. 어쩌면 많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보았던 추상적 형태이지만, 나는 선 線을 찾고 기하학적 도형을 찾아 나의 기억 속에 대입하였던 것이다. 작품 속 아주 가는 실선이 만들어내는 색감의 조화는 아름답고 강렬하다.
작가 페북 사진
그의 작품에서 멍석의 선을 보듯이 어느 작품에서는 쭉쭉 솟아오른 낙엽송 가득한 숲의 이미지가 나타나기도 한다. 하나하나의 선 線이 만들어내는 조형미가 자연을 닮았다. 숲은 길이 되고 그 속에서 자연의 시원한 바람을 느낀다. 기하학적인 도형을 품은 작품 앞에서는 그 도형이 실제처럼 다가온다. 선과 선의 만남이 분리되고 결합되면서 만들어낸 환영이다. 작품 깊이 빠져들면 나는 선을 따라 도시의 건물과 만나기도 하고 자연의 벽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선 線과 면 面은 나를 가두었다 더 넓은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현상을 본다.
그러다 가로로 뻗어나간 선을 깊이 바라보면 적벽 赤壁을 바라보듯 층층이 쌓여있는 색의 아름다움을 마주하게 된다. 층층이 쌓아 올린 세월의 깊이 같은 색의 조화가 드러난다. 곡선으로 이어진 선을 따라갈 때 보는 느낌과 전혀 다르다. 비와 바람에 깎여 시간의 조형을 만들어낸 적벽에 오래 머물면 색에 갇혀버린다. 그럴 때면 두 눈을 감았다 고개를 돌린다. 눈앞에는 농경지에 막 쟁기질을 마무리한 풍경이 펼쳐진다. 땅이 생긴 대로 밭을 갈고 나면 그 문양이 만들어지고 골이 파이면서 줄이 생긴다. 직선도 있고 곡선도 있고 움직임에 따라 모양이 다른 듯 하지만 전체의 조화가 아주 잘 어울린다. 자연이 만든 그림이다. 그런 느낌이 작품에 있다. 푸근함이다. 선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무한함을 느끼게 한다. 자연의 흐름을 담았다. 선이 이어져 면을 만들며 조형성을 갖는다. 마음이 이는 것을 드러내는 도화지가 된다.
가는 실선의 기하학적 문양과 함께 다양한 색과 중첩된 색의 변화는 작품의 깊이를 더해 추상적 의미를 만든다. 실선이 만들어내는 색의 변화가 주는 느낌과 그 실선이 겹치면서 만들어내는 색의 중첩에 의한 변화는 썩이면서도 썩이지 않는 새로운 변화다. 이런 색이 기하학적 무늬를 만들면서 보여주는 전체적인 이미지는 시공간을 초월한 삶의 부분을 바라보는 듯한 심연을 느끼게 만든다. 가상현실의 우주공간이다. 실선으로 표현한 색의 변화가 만든 공간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는 잘 짜인 틀을 보기도 하고 자연의 흐름을 느끼도 하며 시간의 흐름을 축적한 시간을 만나기도 한다.
작가는 가느다란 주사기를 이용해 작품을 한다고 했다. 하나의 선을 그어 면을 만들고 그 면은 다시 선이 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 시작과 끝이 어디일까. 작가가 추구하는 작품의 방향은 어디일까. 가는 실처럼 뽑아내는 선 線의 길 路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본 작가의 선은 자연을 닮은 사람의 마음을 찾아 떠나는 길이었다. 어릴 적 보았던 농경지의 이랑과 멍석에서 느끼는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이 작가의 작품에 녹아있다.
그의 작업은 수행의 과정을 보는 듯 천천히 그리고 지긋이 오랜 시간을 축적하여야 한다. 농부가 쟁기를 들고 밭을 한 골씩 갈아 나가는 시간의 흐름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선이 길이 되고 수확의 기쁨을 안겨주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선은 인생길이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명을 'HOMO-VIATOR'로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삶이 다양하듯이 바라보는 관객이 생각하는 데로 보이는 데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 보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