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에 다녀왔다. 현재스위스 현대미술가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 개인전 <번 투 샤인 BURN TO SHINE, 4.6~9.18>이 열리고 있다. 미술관 자료에 따르면 미술관 전체 공간에 흩어져 전시된 작품은 조각, 회화, 설치 및 영상을 포함한 40여 점으로 국내 전시로서는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한자리에서 그의 그간 작품 중 많은 부분을 볼 수 있는 대규모 전시다.
여러 전시물 중 호기심을 가지게 만든 것은 영상과 아이들이 참여한 전시다. 영상은 작은 공간의 4면을 이용해 태초의 신비처럼 천천히 다가왔다 사라지는 격렬한 춤의 의식이었다. 어쩌면 주술적인 느낌을 받을 정도로 여러 명의 남녀가 악기의 리듬에 맞추어 격렬하게 춤을 추며 움직이는 모습에서 인간의 본능을 깨우칠 수 있을 듯하다. 하나의 점에서 차츰 밝아오는 클로즈업된 영상과 격한 리듬이 장악한 대지의 공간은생명의 근원을 맞이하는 의식이다. 생명이자 에너지다.
또한원주 지역 어린이(3~12세) 1천여 명이 참여하여 해와 달을 표현한 참여형 드로잉작품 2천여 점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관람에 흥미를 느끼게 만들었다. 전시된 작품은 계속 작가에 의해 축적되는 진행형 프로젝트라고 하는데 전시 지역의 특성 즉 아이들의 상상을 통해 만들어 내는 자기 작품의 완성이 아닐까 싶다.
작품과 햇살이 대화를 하는듯
특히 이번 뮤지엄 산 전시의 핵심은 3~4미터에 이르는수녀와 수도승(nuns+monks)이라 이름 붙인 작품이다. 원색의 대비를 통해 몸체와 머리 부분으로 나누어진 조형물은 전시실 안에서 뿐 아니라 야외에 설치되어 자연과 하나처럼 어우러졌다. 가까이 가서는 느끼기 어려운 전체 풍경과 어울릴 때 느낄 수 있는 조화로움이다. 소재는 돌의 형상을 떠서 만든 청동이라고 하는데 그냥 보아서는 돌의 느낌을 그대로 드러낸다. 특히 멀리서 보면 나열된 작품의 크기가 비슷해 작아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거리에 비례해 전체 모습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커 보인다.
백남준관에 설치된 4미터 크기의 노란색과 빨간색 작품은 그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져 보인다. 빛이 스며드는 공간의 구성과 아주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원색의 작품과 돌로 쌓인 공간의 조화가 이루어 내는 멋이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빛이 주는 시각적 효과다. 작품은 어느 위치에서 보아도 그 느낌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꼭 아이들이 몸에 맞지 않은 커다란 천을 휘둘러 감은 듯 넉넉하면서도 포용적이고 신비스러움을 자아낸다. 만약 이 공간에 불상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바로 수녀와 수도승의 이미지와 다름없이 신비로움 가득한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경주 석굴암의 불상에서 보았던 감회로운 빛의 공간을 연상하게 만들기도 하고 미얀마에서 만났던 수도승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어느 순간 작품은 공간에 스며든 빛과 함께 두 개의 개체가 되어 대화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 느낌은 바로 옆 야외에 설치된 작품에서 온전하게 완성된 느낌이다. 틀 안의 신비로움을 벗어나 자연 속에 스며든 모습은 언제부터인가 그곳에 계속 있었던 것 같은 기운을 느끼게 만든다. 노랗고 파랗고 빨간 원색의 물결 속에서 봄 아지랑이 피어나는 자연의 녹색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마도 전시가 마무리되는 가을까지 그 변화는 계속될 것이다. 작품의 무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멈추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움직이는 듯한 정감에 빠진다. 수녀와 수도승의 모습을 드러내는 바위의 모습 자체가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전시연출은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드러내어 배치했다는 느낌이다. 작품은 실내에서 줄 수 없는 자연과 하나 되어 인간과 자연의 하나 됨을 드러낸 것이다. 수녀와 수도승은 신비한 존재다 조각작품이 주는 그 자연스러운 형태는 남과 여를 벗어난 고귀한 존재의 하나로서만 보인다.작품의 조형성이 주는 신비감은 돌의 질감과 색의 변화를 통해 그 무거움을 덜어내고 사람 속에 스며들 수 있는 여운을 남긴듯하다. 칙칙하고 무거운 이미지가 아닌 밝고 경쾌한 느낌을 줌으로써 돌이라는 무거움과 함께 신비로움과 가까이 다가가야 할 존재처럼 인식하게 한다.
이 느낌은 자연 속에 세워 놓았던 돌 작품과 비슷한 느낌을 가져온다. 야외에서 거대한 돌 작품은 자연을 숭배하는 토템사상의 돌출을 통해 인간의 마음속에 간직한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을 관찰하게 만든다. 그 경이로움이 수도승이라는 미완체의 조형을 통해 조금 더 가까이 사람들 속에 스며들었다. 바로 작가가 30여 년간 작업해 온 자연의 순환,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해석이라고 할 것이다. 오늘 자연과 하나 된 작품을 바라보면서 그의 다양한 작품 어느 것보다 강열한 자연사상에 대한 의식을 들여다본다. 어쩌면 자연의 순환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돌아보는 윤회의 의미를 보여준다고도 할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인간내면의 성찰을 추구하고 있다. 수녀와 수도승은 그 내면의 모습이다. 인간이 바라보는 진리, 진실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고민이다. 인간이 탐구하는 끝없는 욕망과 후회 그리고 반성의 과정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기회에 대한 시간의 기록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한발 떨어져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기 자신의 감상에 젖어들 때 감상의 느낌은 배가 될 것이다. 자연을 보되 가슴에 안지 않고 그냥 멀리서 바라만 보는 그런 마음이 있을 때 작가가 의도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미술관 자료
“ 나는 마치 일기를 쓰듯 살아있는 우주를 기록한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계절, 하루, 시간, 풀잎 소리, 파도 소리, 일몰, 하루의 끝, 그리고 고요함까지.”
우고 론디노네 (b.1964, 스위스)는 동시대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로서, 그의 작업은 다양한 조각적, 회화적 전통을 결합한 유기적 조형언어를 구축하며 자연과 인간존재에 대해 깊이 성찰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그의 광범위하고 관용적인 시각은 회화, 드로잉,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 폭넓은 매체를 통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