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내리쬐는 5월에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가 본 적 있는가. 처음엔 따뜻한 마음이 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뜨거운 열기와 눈부심에 답답해진다. 다행히 양 옆을 터서 바람이 들어오면 더위와 시원함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바뀐다. 주말 오후, 그 하우스 안에서 예술과 땅, 자연과 사람의 만남을 기억하는 경험을 맞았다. 강원 화천의 계곡 깊은 삼일리 토마토비닐하우스에서 길종갑 작가의 회갑연 맞이 전시 '향연 饗宴'이 열였다.
비닐하우스는 농부에게 있어 삶의 터전이다. 작가는 낮에는 농부로 밤에는 화가로서 삶을 살아간다. 600여 평의 하우스에는 하우스 폴대를 기둥으로 공간을 벽으로 해서 180여 점의 그림이 걸려있다. 수 미터에 이르는 풍경화에서부터 민중의 울분을 토해내는 그림까지 캔버스천 그대로 또는 패널 자체로 5월의 햇살에 농작물 대신에 그림이 자라고 있다. 전시가 끝나면 토마토가 이 공간을 가득 채울 것이다. 전시공간이 재미있다. 전시동의 비닐하우스는 밖에서 보면 여러동이지만 안에서 보면 하나로 연결되어 큰 광장 같은 분위기다. 그 공간 가운데를 둥글게 감싸 쉼터를 만들었다. 작가는 이곳을 태극의 중심이라고 했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정겨운 공간이다. 그 공간을 짚과 토마토 줄기를 이용해 주변을 에워싸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 속에는 토마토와 다양한 채소가 자라고 있다. 땅 위의 채소와 그림, 햇빛과 바람의 콜라보다.
전시
작품은 비닐하우스를 따라 빙 둘러 진열하고 한편에는 검은 천막을 씌워 암막을 만든 공간에서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작품 전시를 자신의 삶이 그대로 드러나는 공간에서 개최한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다. 수많은 작품의 이야기가 그 공간 속에서 녹아난다. 작가의 작품 세계에는 자연과 땅 그리고 사람들의 삶이 있다. 그의 삶 자체가 농부이자 화가의 삶을 살아가는데서 드러나는 모습이다. 전시 관람은 비닐하우스 입구를 들어서면 바닥에 깔아놓은 짚을 따라 이동하며 관람하도록 되어있었다. 작가의 전시 방향을 알리는 글을 보면 작가의 작품 방향에 대해 몇 가지 큰 줄기로 나누어 전시했다.
그렇지만 전시 공간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인위적으로 뚜렷이 구분을 하며 경계를 만들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림을 보고 발길을 옮겨가면 눈에 들어오는 그림의 장면이 바뀌어가는 알게 된다. 큰 작품 작은 작품이 어울려 전시되어 있는 모습 자체가 즐거움이다. 이런 공간이 아니면 전시 의미가 달라질 것 같다. 바닥에 세워놓은 작품은 문득 대지와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받으며 자연을 거닐고 싶은 생각이 인다. 그러나 맞은편에서 반대로 돌아서서 바라보는 풍경은 달리 보인다. 음울하고 어두운 장막을 드린 듯 서늘한 느낌을 지녔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 상황의 묘사다. 그의 작품은 사회의 어두운 부분과 자연의 아름다움, 마을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한 공간에서 다른 듯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작가의 삶이 그렇다는 듯 자신의 의지를 명확하게 드러내었다.
주제
작가의 작품은 기록성을 지니고 있다. 사회 부조리에 대한 저항의 기록,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록, 마을 사람들과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결국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의 이야기다. 그의 관점에서 바라본 시대의 상황이다. 그러나 그 시각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시각과 일맥상통한다. 60 평생을 바라보고 체험하고 돕고 받으면서 사랑과 증오, 격려와 감사, 질투, 행복에까지 톱니바퀴처럼 흘러 돌아가는 세상의 모습이다. 어느 하나만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닌 또 어려운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과 행복이 있는 그런 삶에 대한 표현이다. 작가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다양한 모습은 어머니의 봉양을 위해 집을 떠나지 못하고 마을에 정착하면서 그의 작품도 변화를 받아들였으리라 생각된다. 그것은 애증이자 현실에 대한 작가의 체념과 자연과 땅과 동화된 결과물이다. 농부로서 작가로서 펼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의 그림 속 자연은 그의 삶이 녹아있는 지역의 풍경이다. 화천 계곡의 모습이고 마을사람들의 모습이다. 땅의 모습이고 그 속에서 자라나는 식물이 지닌 생명의 풍경이다. 토마토 농사를 통해 자연의 힘을 느끼고 앞에 흘러가는 계곡을 통해 자연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그 가운데 농사철마다 농한기마다 수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는 인간미와 정을 품게 하는 요소다. 한잔 막걸리에 웃음을 던지며 반갑게 사람을 맞이할 수 있는 여유는 힘든 농사일 뒤에 마을 사람들과의 어울림과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도 함께 있음을 보았을 것이다. 때로는 서로의 영역 다툼으로 얼굴을 붉히면서도 다음날에는 웃음으로 만남을 이어가는 삶의 현실이다.
그리고 늦은 밤이면 그 모습은 캔버스 위에 기록처럼 남겨진다. 앞집 아줌마도 저 아랫마을 이 씨 아저씨의 모습도 그렇게 영혼의 기록처럼 그의 그림 속에 남아있다. 그것이 삶이고 자연이기에 뚜렷한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흐린 기억처럼 오랫동안 남아있어야 했다. 그의 그림이 풍경은 전체를 세밀하게 드러내지만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불분명하게 나타내는 것도 우리라는 공통의 분모 속에 너의 모습이고 나의 모습이기에 희미한 그림자처럼 뭉뚱그려 묘사했는지도 모르겠다. 일상의 모습은 둔탁한 느낌을 준다 색은 밝으나 무겁고 사물의 명화한 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는 관객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설움과 웃음이 교차하는 가슴은 그 느낌대로 마음속의 응어리를 바닥에 토해낸다. 잊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가슴속 깊은 울렁임이다.
저항
그렇지만 초기 작품부터 끝없이 그의 작품 속에 이어져가는 것은 바로 민중의 삶, 애환에 대한 공감과 고발이다. 마음을 애리게하는 충격적인 장면이 불쾌하게 다가온다. 쓰라린 기억이 현실의 한 부분임을 되새기게 한다. 깊은 계곡에서 자연을 벗 삼아 그림을 그리지만 사회와 동떨어져 살아가지 않고 끝없이 약한 자들의 아픔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것은 그의 순박한 마음 토양에서 우러나오는 울음소리일 수밖에 없다. 자연은 작은 것도 거들어주지 해를 끼치지 않는다. 작가는 그것을 몸으로 채득 했고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야 한다는 믿음을 가졌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이 커다란 재앙을 만들고 이웃에게 생채기를 낸다. 그것은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다. 스스로 치유할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알기에 그는 작품을 통해 그 생채기를 아픔의 과정을 잊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런 아픔이 누구나가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함께 나누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기억하기 위해 그는 기록으로 남긴다. 그 흔적들이 바로 키우던 짐승들을 살처분하기 위해 구덩이 하나에 밀어 넣는 끔찍한 장면이나 짐승보다 더한 인간의 만행에 ‘망각, 수모, 치욕’등 잊지 말자는 구호 같은 것들이 등장하는 이유다. 치유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그는 잊히지 않는 흔적으로 생채기를 간직하고 있다.
자연
또 그의 작품 속 커다란 자연풍경은 신명 난 이야기다. 화천의 풍경 속에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곡운구곡의 전체를 담은 풍경부터 춘천의 도시풍경까지 풍경 속에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담겨있다. 어느 계곡에서 천렵하는 모습도 보이고 냇가에서 물장난하는 자연 속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던 그 여유로움도 담겨있다. 그러나 어느 풍경은 인간이 만들어낸 자연의 상처를 보듬듯이 표현하기도 했다. 검게 타버린 산불의 잔해에 한줄기 나무가 푸르름을 만들며 회생하는 모습과 초록으로 물든 풍경은 검은 공간과 녹색의 공간이 공간을 점유하며 확연한 대비를 통해 그 실상을 드러낸다. 굽이친 계곡의 풍경에서는 산의 지세를 느끼며 그 속에 살아가는 생명의 모습을 보게 한다.
꿈틀대듯 흘러가는 산세의 흐름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느끼듯 대지와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붉은 가을 분위기와 파란색이 가득한 풍경은 여름과 가을이 강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농사의 한창 무르익은 그 시기의 분위기를 닮은 것이 아닐까. 그 자연 속의 놀이에는 현재와 과거가 혼재하며 그 긴 세월의 흔적과 추억을 담았다. 그의 자연풍경은 현장에 있는 듯 움직임이 있다. 계곡은 거센 물결을 만들며 흐르고 바람은 구름을 동무삼아 찾아오고 사람들의 웃음과 뭇 새들의 울음소리가 엉키어 흘러가고 있다. 산을 넘어 휘감은 구름은 금방이라도 산 전체를 덮을 듯 흘러가지만 뒤쪽에는 맑은 하늘이 보인다. 작가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그 느낌을 관객에게 전하고 있다. 그의 자연은 머물러있는 풍경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풍경이다. 자연의 기운을 담았다.
일상의 삶
그런 반면 일상에서 드러나는 작품의 포근함은 삶에 녹아든 정과 사랑이다. 어머니의 모습과 마을사람들의 모습이 어우러졌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현재 내가 가고 있는 농부의 삶과 화가의 길이 행복함을 그들이 함께하기에 현재의 내가 있음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일이 삶이고 삶이 일 이기에 그 속에 녹아든 사람들은 역동적이다. 멈추어 설 줄 모르는 에너지를 품었다. 어머니가 토마토 가게를 열었다는 풍경은 그리움 같은 것이다. 작품의 풍경을 통해 어머니를 드러내놓고 그림 아래에 글을 써넣었다.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 삶의 의미를 담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다. 노쇠한 몸이 미안하고 안타깝고, 그렇지만 함께 있어주어서 감사한 어머니다. 어머니는 그의 삶에 있어 기둥이다.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는 주체다. 그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마을 사람들의 포근함과 따뜻함을 드러나게 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 행동 하나하나가 작가에게는 잊혀서는 안 될 소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머니의 모습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림에 담듯 마을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은 영원히 남아야 하기에 그는 마음으로 그리고 있다.
그의 그림 앞에 서면 가슴이 울렁인다. 거대한 화면 앞에 놀라움과 안도함을 느끼는 순간 나는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땅과 하늘, 산과 들이 하나고 되고 사람이 하나가 된다. 그의 작품은 온몸으로 부딪치고 저항하며, 삶의 의미를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여유로움에서 찾는 자신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