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탈과 가면 그리고 목소리

by 흐르는물

탈과 가면은 같은 말이다. 그러나 탈을 보면 해학적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반면, 가면이라는 단어는 신비함과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다양한 소재의 노출에 따른 기억된 이미지 일지 모른다. 탈의 이미지는 강릉관노가면극, 봉산탈춤, 하회탈 등을 통해 많이 인식되어 왔고, 가면은 영화 속의 베트맨, 조로, 무협영화 속 주인공 같은 모습을 통해 낯이 익다. 탈이라는 것은 본인의 얼굴을 가리는 신분 노출 방지뿐 아니라 그 형상의 다양성을 통해 의미를 담아낸다. 해학과 풍자, 정의 구현 등 다양한 소재로 의도자를 드러내지 않고 대중 앞에서 드러내는 수단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싶을 때는 얼굴을 감춘다. 그것만으로 모두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감춤의 수단이 탈이다. 본연의 얼굴을 그 뒤에 숨기고 보여주지 않음이다. 다른 마음을 품었거나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뒤에서 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기에 탈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삶인 양 할 있는 수단이다. 그 감춤이라는 수단에 의해 평소에는 말하고 행동할 수 없는 일도 과감히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얻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을 보호할 하나의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해학과 풍자다. 불합리함을 꾸짖고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지만 해학과 풍자를 통해 행위자의 정당성을 마련하고 당사자에게는 명분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가면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느낌이 더 강하다. 무언가를 가장하여 뒤에서 꼼수를 부릴 때 가면을 벗으라고 한다. 그래서 좋지 않은 표현으로 가면을 썼다고 말한다. 응큼하고 무서운 자, 비굴한 자에 대한 표현이라고 할 것이다.


요즘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행동을 보면 가면 속에 숨긴 얼굴이 보이는듯하다. 그런데 정작 어느 것이 본연의 얼굴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화난 얼굴인지 웃는 얼굴인지 고민하는 얼굴인지 행동과 다르게 보이는 그 모습에서 어두운 가면을 본다. 탈을 쓴 해학과 풍자에는 엉뚱한 몸짓과 주인공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세상을 비웃으며 희망을 기다리는 여유 담겨 있지만, 그런 것이 사라진 작금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것은 악마의 형상이 아닐까. 그 속에는 추악한 인간본성이 있을 것이다. 가면을 뒤집어쓴 채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는 메아리 같은 말은 공포스럽다. 속담에 '꿩은 풀숲에 머리만 감춘다'고하는 말이 있다. 몸통이 다 드러나 보이는데 자기 스스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다. 두렵고 당황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행동이다.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도록 전국의 광대들이 모두 모여 광화문 광장에서 탈춤이라도 시원하게 한판 벌였으면 좋겠다. 묶은 먼지를 털어내고 신선한 바람이 불어올 듯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