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교감하는 사랑의 대화

by 흐르는물


농촌 살이를 하면서 집에 찾아오는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준다. 직접 키우기에는 부담스럽고 가끔 들리는 녀석이 귀엽기도 하여 자주 찾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검은색에 흰털이 있는 고양이는 마을 주민이 키우던 녀석이라고 한다. 어느 날부터 집을 나와서 돌아가지 않는다고.... 그래서 그런지 먹이를 주면 다가와서 비비고 배를 뒤집고 드러눕기도 한다. 자기를 챙기는 것을 아는가 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챙겨주면 고맙다. 관심 가져 주는 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겠나.


동물은 사람들에게 친밀한 관계를 느끼게 하는 존재다. 근래에는 아이는 안 낳아도 애완동물은 키운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동물을 통해 삶의 활력을 찾는 이가 늘었다는 것일 것이다. 애정을 통해 서로를 의지하는 것이다. 예전 농경사회서는 동물이 노동력이 되어주기도 하고 하면서 더 친밀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냥의 대상이기도 하고 위로의 존재이기도 하다. 사람이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늘 이중성이 있다.


가끔 그림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을 보면 그런 친근함이 더 새롭게 다가온다. 수많은 동물들이 작가의 의식 속에 존재하며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동물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다. 동물을 통해 사람의 감정과 영혼을 비추어 보는 객체다. 작품 속의 동물들은 추억 속의 기억이기도 하고 자신의 현실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이상을 꿈꾸는 평화로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민화 속의 까치와 호랑이 그림을 통해 해학적이면서도 친근한 이미지를 많이 보았다. 또 옛 결혼식에 사용되었던 닭이나 원앙의 모습 속에서도 인간과 동물이 서로 닮고자 하는 의미를 알 수 있다.


마르크 샤갈은 <나와 마을, 1911, MoMA> 작품에서 인간과 동물의 구분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동물을 사람과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다. 그에게 동물은 현실의 존재가 아니라 사랑과 기억, 그리움 속 상상 속의 매개체다. 그 시선에는 따뜻한 감정과 사랑이 담겨있다. 그의 그림은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관계를 시적으로 표현한 한 편의 동화라 할 것이다. 이것은 샤갈이 유대 전통문화와 농촌 공동체의 기억을 토대로 한 감성적 회화를 주로 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반면 프란츠 마르크의 〈푸른 말 I, 1911>은 순수함과 영적인 평화를 상징한다. 말은 전체가 푸른색으로 표현되고 몸의 곡선은 산의 흐름과 어우러진다. 자연의 한 부분처럼 당당하게 서 있다. 자연과 하나 된 모습이다. 노랑과 붉은색 초록색으로 표현된 풍경은 다양한 색의 조합으로 청색의 말을 더 신비롭게 드러내주는 역할을 한다. 그는 인간 중심적 문명에 대한 반발로 동물은 인간의 감정을 대신 표현하는 존재로 가장 자유로운 말을 그렸다고 한다.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1897>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나타낸다. 사막 한가운데 잠든 여인 곁에 사자가 서 있다. 사자는 여인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서 있고 주변은 평화롭다. 꿈과 현실이 맞닿은 경계 위에서 인간이 자연의 품에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각각의 영영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를 하나로 묶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상상 속에서 실현한다. 그의 작품 속 동물은 실제 경험이 아니라 판화·박물관·상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프리다 칼로의 〈작은 사슴, 1946>을 보면 전혀 다른 관점에서 동물을 바라본다. 사람과 동물의 교감이 아닌, 동일화된 자기표현이다. 사슴의 몸에 화살이 꽂혀 있고 얼굴은 프리다 자신이다. 여기서 동물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는 또 하나의 자아라 할 수 있다. 작품 속 동물은 연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이 느낀 아픔을 사슴의 눈빛 속에 담았다. 어릴 때 소아마비와 추후 교통사고로 인한 고통의 감정을 사슴을 통해 드러냈다.


이러한 작품 성향은 작가의 삶과 시대적 흐름에 따른 영향이 반영되었다 할 것이다. 그것이 개인의 삶이든 사회의 모습이든 현실을 반영하는 드러냄이다. 고대 동굴벽화에도 동물 모습이 남아있듯이 동물은 인간과 오랫동안 함께해 왔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행동에서 사랑과 친밀함을 느껴온 존재다. 때로는 나의 아픔을 위로하고 때로는 평화로운 세상 속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 그것은 또한 인간의 삶을 반추한다. 결국 작품 속의 동물은 자신의 시각이다. 드러내고자 하는 객체의 변형이다. 직접적인 것보다 더 선명하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한 매체가 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예술로 승화한 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