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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지니 Jan 31. 2021

아들의 고민

코딱지 육아 


아들과 레고로 역할극을 하던 어느 날의 오후. 우리는 친구도 되고 공사장 동료도 된다. 그날은 유치원 친구 역할을 하던 중이었다. 엄마와 아들 사이를 벗어나면 어떤 질문을 해도 대답을 피하지 않는다. 놀이 중에 틈을 봐서 평소 묻고 싶던 질문도 던져본다. 자연스러운 속마음을 얻기 위해 충실한 역할극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놀이의 흐름이 해이해지는 순간 아이의 몰입도 떨어지기 때문에 적당한 텐션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그렇긴 해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역할극 놀이에 필수인, 사건에 치밀한 개연성이 필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난데없이 불이 나고, 난데없이 지진이 일어난다. 그러다 또 난데없이 악당이 나타난다. 그리고 언제나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 헬로카봇! 힘을 합쳐 한 가지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 질문 하나를 던졌다. 




"친구야 유치원에서 힘든 일은 뭐가 있어?"


"음.. 유치원에 휴지가 많이 없어. 코딱지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예상도 못한 답변이다. 집에서는 그. 것. 을 휴지에 싸서 버리라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 아이는 유치원 교실에 휴지가 보이지 않아 난감한 모양이었다. 순간 조언을 해 주려는 엄마 정체성을 밀어내고 친구를 유지했다. "아, 나도 그래. 나랑 똑같네. 역시 우린 친구라니까!"  




그러고 보니 아들이 얼마 전부터 손가락으로 시원하게 '사건'을 끄집어내도 그 사건을 처리하는데 휴지를 사용한 모습을 못 본거 같다. '갖가지 나름의 방법'으로 처리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이는 스스로 자란다. 가끔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답이 없는 고민에 빠질 때가 많다. 어쩌면 그냥 스스로 '사건'을 처리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 지켜봐 주는 것이 정답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도 현실 속에는 헬로카봇이 나타나 "트랜스포메이션"을 외치며 자신을 도와주는 로봇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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