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넷 엄마로 살기, 중간점검

by Soo

그저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딸이 없어 조카딸인 나를 딸처럼 여겨주시는 이모였다.
내 안부를 묻는 이모에게 언제나처럼 적당히, 덤덤하게 전하는 근황의 끝에 이모가 내 신년 사주를 보았다는 얘기를 꺼내신다.

ㅡ첫째가 아주 똑똑하대. 정말 잘 될 거라고 하니 잘 가르쳐. 둘째는 예민하대. 그래서 잘 다독여주고 챙겨주면 참 좋대. 셋째랑 넷째도 나쁜 거 하나 없대. 똑똑하고 바르게 잘 자란단다. 강서방 일도 이번해에는 더 잘 된다고 하니 힘내. 근데.. 네가 좀 아프대. 우울증. 산후우울증이 심해져서 좀 아프대. 마음 잘 다스리고 화난다고 애들 때리구 그러지말어. 절대 그러지 말어라. 알았지? 이모 말 무슨 말인지 알지?ㅡ

그저께도 어제도, 오늘도 봤던 책의 내용이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는 것처럼 지긋지긋하고도 낯선 시기에 덩그러니 놓여진 나는 이모의 말씀을 고개를 끄덕끄덕 하고 듣다가 어느새 목이 칵 메어왔다.

온 집안을 뽈뽈거리며 기어 다니는 넷째가 태어난 지 이제 6개월이다. 이제는 얼추, 허둥대지 않고 아이를 볼 수 있다. 수도 없이 했던 건데 왜 기억이 안나지 싶은 순간은 아직도 이따금씩 찾아 오지만.

그래. 나는 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아기가 울면 안아줘야 하고, 기저귀를 들춰 봐야 하고, 때맞춰 내 끼니는 못 챙겨도 이유식과 분유를 먹여야 하고.
내 몸에선 17세 남학생이 축구 한 판을 뛰고 들어온 것 같은 냄새가 나도 아기는 보송보송하고 향긋하게 씻기고 갈아 입혀야 하고.

배고프고 지쳐 실신할 즈음 큰 놈들이 남긴 빵 한 조각을 입에 욱여넣어 급하게 주림을 삭히기도 하고.

그뿐이랴. 큰 놈들이 알아챌까 속으로는 잔뜩 찌푸린 마음, 겉으로는 웃어 덮어야 하지.

나도 안다. 모든 어미가 이렇게 찌질하고 구차하게 살지는 않는다. 왜 나는 이 모든 것을 묵묵히, 당연하게 하고 있는가 생각해보지 않은 적이 없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무대 세팅은 이 모양이구나 라는 것이 그 생각의 종점이었다.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남편은 남편대로, 일은 일대로 하며 아이들과 나를 신경 써야 하는 고충을 토로하고 나는 나대로, 왜 이렇게까지 출산과 육아를 감당하지 않아도 될 만큼이나 계속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퍼붓는 광경이 지속되었다.

초보 엄마, 아빠가 처음 부모가 된 것처럼 우리 부부도 아이 넷의 부모는 처음 해 보는 것이기에.

크고 작은 부부싸움의 결론은 언제나 4명의 아이를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치우고, 재울 채비를 하고 재우고 하는 식의 협동 플레이를 꾹 다문 입으로 해낸 하루의 끝에 잠자리에 누워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짠터지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건 둘 다 마찬가지인데 내 짠내를 어필하느라 상대방 짠한 걸 잊는 순간이 올 때 우리는 삐걱삐걱 쨍그랑 소리를 낸다.

그러면 어느샌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모르는 아이들이 다가와 궁둥이 붙이고 앉아 있을 수 없게 정신을 쏙 빼놓다가도 자꾸만 웃게 만든다. 큰 것들은 큰 것들 대로, 작은 것들은 작은 것들 대로.


결국 그 예쁜 것들이 웃는 것이 예뻐 우리도 웃는 것이다.

충분히 자지 못하고 쉬지 못하는 날들이 쌓이고 근육통에 파스로 도배를 하고 우스갯소리로 우울할 틈도 없다며 산후우울증을 이겨낸 것처럼 말해도 이따금씩은 화를 참기가 어려워 무진 애를 쓴다.

그러고 보니 참 화도 많이 내고 웃기도 많이 한다


해야 할 것은 너무 많은데 안 하면 안 된다 는 난처한 입장은 첫 아이를 낳고 180도 변한 생활에 봉착했을 때 아주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졸려도 잘 수 없고 배고파도 먹을 수 없으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도 그럴 수가 없다니.

화나도 화내선 안 되고 때려치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니!


책임감이 투철해서도 아니었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인간이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해야 하니까. 할 수 없이, 어쩔 수 없어서.


그래야 내 아이가 졸릴 때 잘 수 있고 배고플 때 먹을 수 있으니까. 아이에게 화를 내면 주눅이 들어버리고 부모 노릇을 하지 않으면 아이가 제대로 자랄 수 없으니까.


그게 전부다. 그러니까 했지.


좋은 부모가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애초에 나는 그럴 자신은 없었다. 나는 한참 부족한 사람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욕심은 자꾸만 생기는 것이다. 저절로 잘 커줬으면 하고. 저절로 기저귀를 떼고 걸음을 걷고 말을 하고 글을 읽었으면. 저절로 공부를 잘하고 저절로 잘 살아줬으면.


하지만 저절로 될리는 만무하고, 그래서 안간힘을 쓰고 해 보려는 것이다. 다 똑같다. 피곤하게들 그러고 산다.


부모이기 때문에.


그래서 결론은

#자고싶다는이야기

#밤중수유무섭다는이야기

#넷째출산6개월차

#아이가넷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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