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지만 불안했고, 준비했지만 막막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한국에서 몇 달간 머물며 정리할 것들이 많았다.
주변 사람들과의 작별, 그리고 마음속 각오.
겉으로는 담담한 척했지만,
기대만큼 걱정도, 설렘만큼 두려움도 공존했다.
다시 미국행
이번 역시도 나 혼자 먼저 미국으로 떠났다.
나는 적응할 시간도 없이 첫 번째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고, 매일이 새로웠다.
문화도, 프로세스도,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도 달랐다.
하지만 적응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지금은 성과를 보여줘야 할 때”라는 압박감이 강했고
하루하루 정신없이 지나갔다.
가족, 그리고 진짜 정착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가족이 미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아내와 아이를 다시 만났을 때의 감정은 복잡했다.
기쁨과 함께 미안함, 그리고 걱정이 밀려들었다.
무엇보다 걱정됐던 건 아들의 적응이었다.
어릴 때 데이케어와 킨더를 다니긴 했지만
워낙 오래전이라 아들은 기억도 없는 상황이고
언어도, 문화도, 친구도 모든 게 새로웠던 미국의 학교
“학교 가기 싫어...”
“왜 우리는 여기까지 와야 했어?”
아들은 매일 그렇게 물었고, 나는 쉽게 답하지 못했다.
아들은 그리움과 낯섦 사이에서 힘들어했다.
그 모습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다시금 다짐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 지금은 몰라도 언젠가는 알게 되기를.”
두 번째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조직 내에서도 내가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이 더 뚜렷해졌다.
회사에서의 나, 개발자로서의 나, 그리고 남편과 아빠로서의 나.
여러 겹의 정체성을 다시 꿰어 맞추는 시기였다.
아직은 ‘진행 중’인 선택
우리가 이곳 미국에 온 이유는 분명했다.
더 넓은 기회, 더 다양한 가능성, 그리고 새로운 삶의 실험
하지만 아직 우리는 ‘이민자’라고 단정 짓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시기, 이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중이다.
언젠가 아들이 대학에 진학할 무렵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 선택은 더 이상 나의 선택이 아닌, 아들의 몫으로 넘겨주려 한다.
지금까지 아들은 나의 결정들로 인해 낯선 곳을 따라다니기만 했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그의 의지와 꿈이 삶의 방향을 정하게 하겠다는 것이
우리 부부가 함께 내린 결정이다.
그에 맞춰 우리도 다시 한번 인생의 다음 단계를 그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