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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Aug 13. 2019

그 때, 우리 이 음악 2

「내가 본 마지막 그녀」

김목경

1990 / 『Old Fashioned Man』 / 서라벌레코드 / Blues Rock

함께 들으면 좋은 곡 「부르지마」,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 강허달림 「기다림, 설레임」, 신촌블루스 「아쉬움」, 해바라기 「너」

Who Is..

한국대중음악사에서 블루스를 연상할 때 누구보다 먼저 떠오르는 뮤지션은 김목경이다. 대중음악인으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고, 펜더사에서 커스텀 기타를 헌정 받을 정도로 김목경은 여러 영역에서 인정받고 있다. 지금은 김목경의 원곡으로 알려졌지만,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한창 히트를 할 때 대중은 김광석의 곡으로 알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내가 본 마지막 그녀」와 「부르지마」는 김목경의 연주 스타일과 한국적 블루스의 기품, 그리고 안배된 테크닉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수작이다. 김목경은 1990년 데뷔 앨범 『Old Fashioned Man』을 발표한 이후 2008년 『Blues』까지 6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으며, 2010년에는 20주년 기념 라이브 앨범을 내놓았다.  


An Episoede..

1986년에 발표된 시나위와 부활, 백두산의 데뷔 앨범은 서울 파고다극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여러 헤비메탈 뮤지션에게 자긍심과 기대감을 심어줬다. 창작곡이 중심이 되어 발표된 세 밴드의 데뷔 앨범은 해외 뮤지션에 집중되었던 대중의 관심이 국내 뮤지션에게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여기에 단대부고, 서울고, 상문고 등을 위시한 8학군 진영의 스쿨 밴드, 인천과 부산 등 지방에서 활동하던 밴드까지 가세하면서 헤비메탈의 기세는 보다 더 높아질 수 있었다. 그러나 1987년 부활의 김태원이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된 후 부활과 백두산이 순차적으로 해산했고, 승승장구하던 시나위도 멤버 교체 후 발표한 3집 『Freeman』이 실패하면서 헤비메탈 신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이후 헤비메탈 뮤지션들은 이태원과 미8군 클럽을 돌며 연명했다.

1989년 발표된 『Project Rock in Korea』 앨범은 혼란스러웠던 헤비메탈 신의 부활을 이끌었으며, 다음 세대와의 가교 역할을 하며 장르의 확장성을 가져온 뜻깊은 작품이다. 김종서와 임재범, 김도균, 손무현, 김영진, 강기영, 이근형, 김민기, 손경호 등 대형 뮤지션들이 다수 참여했던 이 앨범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인물은 이중산이었다. 당시까지 전설로 회자되고 있던 이중산이 참여했다는 점만으로 이 앨범은 마니아들에게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중산은 1980년 무당으로 앨범 데뷔했지만 미8군 무대를 시작으로 이미 다양한 활동을 벌여 나온 기타리스트이다. 그러나 이중산은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가운데 예상 밖의 장소에 나타나서 예기치 않게 연주를 펼치는 등 기인으로 통하던 인물이었다.

이중산과 기타리스트 김광석은 오랜 인연을 지닌 친구 사이다. 그러나 김광석은 1955년생으로 출생년도 면에서 이중산보다 나이가 적다. 이중산보다 나이가 어린 김광석이 친구가 된 사연은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할 당시에 6~7살의 나이를 올려서 대인관계를 유지했던 김현식의 경우와 다름 아니었다. 뒤늦게 김광석의 실제 나이를 알게 된 이중산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공연을 준비하던 김광석을 찾아 나선 이중산은 “나보다 나이도 어린 광석이 어디 있어?”라고 큰 소리를 내며 대기실 문을 대차게 열었다. 당황스러워할 것으로 생각되었던 김광석은 이중산을 바라보며 천연덕스럽게 “형이라고 할게.”라는 말을 던졌다. 김광석의 당당한 태도에 이중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크게 웃으며 “이제 와서 무슨 형동생이냐. 우리 이제부터 진짜 친구다.”라고 했다.



김목경은 김광석과 음악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다. 경주 한국대중음악박물관 2층 영화관 입구에는 김광석과 김목경이 사용하던 기타가 한 공간에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을 기획하던 중 뮤지션들이 사용하던 악기를 기증받아서 여러 공간에 개별 전시관으로 운영하자는 계획을 세웠고, 그 과정 속에서 두 뮤지션의 소중한 악기도 전시될 수 있었다. 당시 두 사람 가운데 김목경이 먼저 흔쾌히 자신의 기타를 기증하겠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시간이 꽤 지나도 악기가 도착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1970년대 중반 미8군 무대에서 출연료를 대신해서 받았다는 김광석의 빈티지 기타가 먼저 도착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목경의 기타가 도착했다. 평소 무대에서도 자주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몹시 아끼던 기타였다. 김광석보다 김목경의 기타가 늦게 도착한 이유가 있었다. 김목경은 함께 전시될 김광석의 기타가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닌 악기일지 궁금했다. 결국 김목경은 김광석이 기증한 기타가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녔는지를 확인하고 나서야 “광석이 형보다 더 좋은 기타를 기증해야지.”라는 말을 하며 지인을 통해 기타를 보내왔다. 음악을 통해 여러 갈래로 이어진 뮤지션들의 일상, 그 안에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일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몇 가지 일화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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