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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Nov 01. 2019

함중아의 음악 인생

신중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대중음악계에 데뷔했던 함중아는 김홍탁과 함께 했던 최헌과 유사한 이미지를 연상하게 만드는 뮤지션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라이브 클럽에서 활동하던 함중아는 1971년 신중현이 새롭게 결성했던 밴드 골든 그레입스의 [즐거운 Go Go 파티]로 데뷔했다. 이후 함중아는 리바이블 크로스와 양키스, 무서운 아이들을 결성해서 1970년대 대중음악계의 토대와 성장을 이끌었다. 다양한 장르에 걸쳐서 섬세하고 감성적인 음악을 구사했던 함중아는 싸이키델릭과 프로그레시브록, 트로트 고고 등의 장르에서 유독 돋보였던 인물이다. 특히 블루스에 기초한 그의 기타 연주와 작곡 스타일은 다채로운 화법과 대중음악의 새로운 지향점까지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음을 당기고 튕기는 창법이 독특했던 그의 가창력은 트로트와 록을 교묘하게 뒤섞은 스타일로 오랜 시간 동안 대중의 사랑을 이끌었다.


1975년 대마초 파동 이후 긴장되게 흐르던 가요계에 그룹사운드 음악은 새로운 활로를 개척했다. 당시 이러한 분위기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밴드가 바로 함중아가 리드하던 함중아와 양키스였다. 양키스의 음악은 1978년 함중아가 기타와 보컬을 직접 담당하며 발표한 [초록별들 골든 그립스]에 이르러 만개했다. 이 앨범에는 관악과 록사운드의 나른한 전개 속에서 함중아의 매력적인 가창이 독특하게 배인 ‘안개속의 두그림자’가 큰 히트를 기록했다. 또한 신중현을 사사한 함중아의 기타 연주가 일품인 ‘추억의 바닷가(썸머타임)’에서 연출된 함중아의 고음 가성 역시 충격적이었다. 전성기 시절의 함중아는 여러 면에서 신중현과 유사한 행보를 보여 왔다. 출중한 기타 연주와 작곡 실력은 물론 여러 여자 가수를 발굴해서 데뷔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는 또 하나의 신중현이라 할 수 있었다.
 
1974년 함중아는 김지연을 앞세워서 리바이블 크로스 앨범을 제작했고, 1980년에는 안양예고에 재학 중이던 허윤정을 발탁해서 양키스의 타이틀로 음반을 발표했다. 특히 허윤정과 양키스의 ‘그 사나이’는 박진감 넘치는 곡의 전개 방식과 호쾌한 가사가 어필되면서 대중적으로 히트를 기록했다. 함중아는 이후 발표된 [골든 디럭스 1집]에서 ‘그 사나이’를 새로운 버전으로 변형했고 자신이 직접 가창까지 담당했다. 이 버전의 인트로와 간주에는 매우 흥미로운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초반부의 리듬감은 바닐라 퍼지(Vanilla Fudge)의 ‘You Keep Me Hangin’ On‘을 연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중반부에는 신중현의 대표곡인 ‘미인’의 리프가 흩뿌려지며 감상에 미묘한 재미를 전달한다. 함중아가 발굴한 또 한 명의 여자 가수는 1980년대를 풍미했던 정수라이다. 정수라가 12살의 나이였던 1974년 함중아는 “노래 잘하는 여자아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직접 찾아 나섰다. 정수라가 지닌 재능을 확인한 함중아는 한 달 간의 연습 기간을 거쳐서 한국일보가 주최한 <제1회 한국가요제>에 내보냈다. 정수라는 함중아가 직접 작사.작곡해서 전한 ‘종소리’를 부르고 인기상을 수상했고 가요계의 주목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함중아의 음악은 영화를 통해서도 크게 재조명을 받았었다. 먼저 ‘그 사나이’는 유해진이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던 영화 <럭키(2015)>에 삽입되었다. 그리고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 전성시대. 2011)>에서는 함중아와 양키스의 ‘풍문으로 들었오’를 장기하와 얼굴들이 리메이크해서 큰 인기를 얻었다. ‘내게도 사랑이’는 가수로써의 함중아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곡이다. 이 곡은 김건모의 10집에 리메이크해서 수록되었으며, 인순이와 노라조, 캔 등의 버전으로도 발표되며 시대를 넘어선 명곡으로 주목받았다.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의 개관을 앞두고 포항에서 생활하고 계시던 함중아 선생님과 몇 차례에 걸쳐 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큰 눈동자에 건장한 체형, 선한 인상에서 전달되는 기운은 매우 강렬했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당신이 거쳤던 음악 활동에 대한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장시간에 걸쳐서 전해 주셨다.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가끔 나누던 안부가 무색할 정도로 안타까운 하루가 지나고 있다.
한국 대중음악계에 새로운 창작 방식과 스케일, 스타일을 선보이셨던 함중아 선생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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