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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Nov 05. 2019

드라마 시그널과 삽입곡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이다. 그러나 매주 회를 기다리며 본방송으로 감상하지 못하는 성향이다. 최근에는 DM그룹의 공식 유배지로 불리며 재래 상권에도 밀리는 저품격 무사태평 마트를 소재로 한 <쌉니다 천리마마트>를 몇 회씩 몰아서 즐겨 본다.

이 드라마는 ‘고객은 왕이 아니다. 직원이 왕이다!’는 슬로건을 걸고 공개되었던 웹툰 <쌉니다 천리마마트>를 원작으로 제작되었다. 웹툰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작가 김규삼의 글과 그림으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총 160화로 완결된 작품이다. ‘인간 카트’와 같은 웹툰에서 선보였던 기상천외한 발상과 상황 전개가 드라마로 연출이 가능할지 궁금했지만 매회 명장면이 터지며 나름의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했다. 꽤나 많이 보아왔던 드라마 가운데 아직도 먼저 떠오르는 드라마는 2016년에 16부작으로 방영되었던 <시그널>이다.


2018년 일본에서 원작을 거의 그대로 리메이크하는 등 번외적으로도 성과를 이끌었던 <시그널>은 높은 시청률과 마니아층까지 형성했던 드라마이다. <시그널>은 실제로 발생했던 장기 미제사건 중 하나였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이 드라마는 <싸인(2011)>과 <유령(212)>으로 잔잔하게 물결치던 작가 김은희를 최고의 작가로 등극하게 만든 작품이다.

<시그널>의 성공으로 김은희는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었던 대작 <킹덤(2019)>까지 기획할 수 있었다. 이처럼 작가 김은희에게 <시그널>은 인생 작품이라 할 만하며 적잖은 대중에게도 여전히 인생 드라마로 손꼽히고 있다. 지금에도 <시그널>의 후속 편을 기대하는 대중이 적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실제 존재했던 아픈 현대사를 소재로 여러 고증을 통해 과거를 현재로 이끈 이유가 크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드라마 <수사반장(1971~1989)>과 영화 <살인의 추억(2003)>도 동일한 사건을 소재로 대중의 주목을 이끈 적이 있다. 그러나 <시그널>은 현실에 준해서 사건을 파헤쳤던 두 작품과 달리 초현실적인 연결고리를 통해 극 중에서 사건을 해결해 낸 첫 작품이었다. 그리고 드라마 <시그널>의 바람처럼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얼마 전 해결의 실마리가 나타나기 시작하며 전 국민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시그널>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또 다른 이유는 주연을 맡았던 이제훈과 조진웅의 열연에서도 발견된다. 배우로서의 조진웅이 처음으로 각인된 작품은 <말죽거리 잔혹사(2004)>와 <비열한 거리(2006)>에서였다. 특히 지금에는 상상할 수 없는 체형의 조진웅이 <비열한 거리>의 주차장 씬에서 쏟아냈던 짧지만 강렬했던 대사는 몇 번을 반복해서 볼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조연에서 주연급 조연으로 상승하던 조진웅이 <시그널>에서 맡았던 역할은 강력계 형사 이재한이었다.

시공간을 벗어나 이재한 형사와 소통하며 자신이 담당한 미제 사건을 풀어나가는 박해영 프로파일러 역을 연기했던 이제훈을 처음 접했던 극은 <파수꾼(2010)>이었다. 청소년기의 독단적인 감정 뒤에 이어진 폭력과 자살, 그 사이에서 감상자를 몰입하게 만들었던 이제훈의 연기는 꽤나 매력적이었다. 조진웅과 사뭇 다른 캐릭터로 주목받았던 이제훈은 제대 후 첫 작품으로 <미생>의 장그래 역을 제안받았지만 고사했다. 제대 후에 자신의 캐릭터를 보다 더 강렬하게 담금질하려 했던 이유가 컸다. 그러나 <파파로티(2012)>에서 인연을 맺었던 한석규와 함께 출연했던 역사드라마 <비밀의 문(2014)>은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조용히 변화를 기다리고 있던 차에 <미생>을 연출한 김원석 PD가 다시 한번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왔다. 그리고 <시그널>의 박해영 프로파일러 이제훈은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배우로 거듭날 수 있었다.


드라마 <시그널>은 여러 공간과 감정의 굵은 선을 오가는 구성과 전개를 통해 긴장된 감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결과에 도달했다. 극의 주된 배경이었던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연결되어 있지만 사회·문화·경제적인 면에서 간격이 매우 큰 시기이다. 그 연속된 시간 사이에서 발생했고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가던 하나의 사건에 대한 고리에는 「꽃잎」과 같은 신중현의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엔딩에 등장하는 「떠나야할 그 사람」과 오프닝 곡 「나는 너를」은 각각 신인 잉키와 레이니 선 출신의 보컬 정차식이 리메이크해서 삽입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드라마 <시그널>은 과거에 있었지만 지워져 가던 사건을 현재로 이끌어 내서 문제를 해결하는 기획이 중심이다. 또한 그 사건과 시간 사이에 놓여 있던 주인공들 간의 숨겨지고 묻힌 여러 사건들이 해소되는 과정이 돋보였다.


<시그널>이 매 회 거듭되며 제시했던 극적인 흐름에는 이 두 곡이 지닌 감정의 파동이 크게 작용했다. 인순이가 디스코 사운드로 리메이크하는 등 적잖은 가수들이 새롭게 버전을 발표했던 「떠나야 할 그 사람」은 펄 시스터즈가 처음 불렀던 곡이다. 그리고 「나는 너를」은 박인수와 함께 신중현 사단의 황태자로 불렸던 장현이 처음 부른 이후 서유석 등이 부르며 오래도록 사랑받아 오고 있는 노래이다.

조동진의  「행복한 사람」과 산울림의 「회상」 등 주옥같은 명곡들이 흘렀던 드라마 <시그널>은 음악적으로도 훌륭한 구성을 보였던 작품이다. 잊을 수 없고 잊힐 수 없는 우리의 기억과 삶은 과거와 현재가 오가며 연속되고 마지막을 향한다. ‘세월이 흘러 익어간 사랑이 가슴속에 메워 있었다’고 노래한 장현의 「나는 너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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