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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Jul 20. 2020

블랙홀 트리뷰트 음반

[Re-Encounter the Miracle]

30년을 이어낸 신뢰와 존경의 헌정음반, 

[Re-Encounter the Miracle]     



어쩐 일인지 1980년대 후반을 기억한다. 신림사거리에는 늘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났고 경찰단지 놀이터 어귀에서는 늘 누군가 삥을 뜯겼다. 70년대 말죽거리만 잔혹한 게 아니었다. 데프레파드의 ‘Armageddon it’을 듣고 메탈에 빠져든 이후 더 강한 것을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미국과 영국과 독일과 스웨덴을 동경하며 청계천을 드나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순례와도 같았다. 한국 밴드들은 어땠을까? 내가 파고다의 경험을 공유한 세대가 아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동경과 순례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뭔가 커다란 판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꼈지만 앨범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블랙홀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Miracle]이 보여주고 있는 단단하고 결기어린 패기는 4, 5, 6집을 거치며 확장되었고 이후로도 실망을 안겨주지 않았다. 블랙홀은 언제나 거기 있는 한국 헤비메탈의 믿음였다. 새로 만든 [Miracle]은 여전히 마이너리티인 30년 후의 헤비메탈 밴드들의 결기로 만들어냈다. 믿음의 역사는 이렇게 쭉 연결되어 있다. 

- 최지호 (음악취향Y)     


1989년과 2019년 사이에 벌어진 일을 생각해본다. 스쳐간 밴드를 뒤돌아본다. 본래 가정이란 무의미하다. 하지만 [Miracle]이 없었다면, 한국 헤비메탈의 본격적인 출발은 적어도 몇 걸음 늦춰졌을 것이다. 원초적 로큰롤의 매력을 간직한 ‘야간비행’, 정통 파워 메탈을 들려주는 ‘아이야’, 정교하고 섬세한 연주로 블랙홀만의 서정성을 그린 ‘밀랍인형’ 등이 증명한다. 앨범의 오프닝과 클로징을 장식했던 ‘깊은 밤의 서정곡’과 ‘겨울풀잎’은 록 발라드의 전형이 되었다. 그로부터 30년. 표현 방식, 연주 테크닉, 아이디어, 녹음 기술 등 모든 면에서 한국 헤비니스는 진보했다. 어쩌면 이런 앨범이 있었는지조차 잊을 만큼 말이다. 하지만 ‘시작’이란 본디 조금 서툴고, 투박하며, 그래서 더 위대한 법이다. 이제 위대한 선각자 블랙홀을 기억하는 트리뷰트 앨범 [Re-encounter the Miracle]을 바이닐로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기쁜 소식이다. 

- 이경준(異鳴 편집장)       


여러 뮤지션들이 한 뮤지션에게 존경을 표하는 헌정(tribute) 앨범은 흔히 두 가지 고민에서 비롯된다. 헌정 대상이 맞은 특정 순간을 기억할 것인가 아니면, 그 대상이 남긴 불특정 업적들을 기릴 것인가. 이 앨범은 둘 중 전자를 택했다. 즉, “한국 헤비메탈의 큰 형님” 블랙홀이 발표한 1989년도 앨범 전체를 작금 한국 헤비메탈을 대표하는 팀들이 한 곡씩 해석해나가면서 블랙홀의 데뷔 30주년은 자연스레 기념되는 것이다. 이는 여러 뮤지션들이 AC/DC 하나만 바라보며 완성한 [Thunderbolt: A Tribute to AC/DC]와 핑크 플로이드, 메탈리카, 아이언 메이든의 대표작 1장씩을 통째로 라이브 커버한 드림 씨어터의 유명한 부틀렉 시리즈를 반 씩 섞은 콘셉트이기도 하다. 진화가 진화를 이룬 앨범. 한국 헤비메탈의 진화를 증명하는 아홉 팀이 한국 헤비메탈의 산 증인이 만든 아홉 곡의 진화를 들려준다. 호쾌한 메써드의 ‘야간비행’, 차분한 언체인드의 ‘아~이~야’, ‘Rock It’을 부여잡고 포효하는 멤낙, 블랙메탈 교향악으로 새 옷을 입은 ‘밀납인형’. 이것은 헌정이라는 가치를 넘어 작품 자체로도 의미를 갖는 훌륭한 헤비메탈 앨범이다. 

- 김성대 (미디어팜 편집장)     


‘깊은 밤의 서정곡’, ‘노을’, ‘야간비행’ 등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명곡이 수록된 음반이긴 하지만, [Miracle]이 30년간 쌓아온 블랙홀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취를 담은 작품이라 말하긴 어렵다. 대신 매년 단독공연을 포함 100여회 이상 헤비메탈을 연주하며 무대를 지킨 그 기적과 같은 30년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다른 앨범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30년이 지난 지금, 블랙홀의 음악을 들으며 성장한 후배 밴드들이 [Miracle]과 다시 만났다. 2019년 한국 록/메탈의 다양성과 음악적 완성도의 바로미터라 여겨도 문제없을 밴드들이다. 원곡은 각 밴드의 음악 성향에 의거하여 완벽하게 해체·재구성되었는데, 그럼에도 블랙홀이 만든 멜로디의 얼개는 끈질기게 곡 안에 남아있다. 아니, 후배들은 그 멜로디를 끈질기게 살려내었다. 이 질기게 얽힌 우정과 존경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헤비니스 뮤직의 씨앗은 해외에서 흘러들어왔을지언정 한국의 토양에서 한국적인 방식으로 거칠지만 강력하게 한국의 음악이 되었다고. 

- 조일동 ([Re-Encouter the Miracle] 기획자,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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