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일리노어 페이건이 본명인 빌리 홀리데이는 1915년에 태어나 1959년에 사망한 재즈 보컬리스트이다. 주급 18달러를 받고 나이트클럽 가수로 무대에 오르며 빌리 홀리데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배우 빌리 도브의 ‘빌리’와 그의 아버지 클래런스 홀리데이의 성 ‘홀리데이’에서 따온 이름이다. 블루스 싱어인 베시 스미스와 루이 암스트롱에 영향받은 빌리 홀리데이는 카운트 베이시 악단에서 함께 활동했던 레스터 영이 지어준 ‘Lady Day’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빌리 홀리데이는 ‘미국의 팝 보컬의 예술을 영원히 바꿔놓았다’는 평가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재즈 여가수로 손꼽히며, 엘라 피츠제럴드, 사라 본과 함께 재즈 3대 디바로 칭송받는다.
블루스에 기초한 그의 보컬은 가창력의 정교함에 더해진 특이한 음색에서 장점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억양과 템포를 조절하는 새로운 보컬 형식을 창조했으며, 자신이 살아온 현실을 노래에 투영한 여러 곡들을 통해 독특한 감성을 담아냈다. 일편 순탄하지 못한 불행한 삶을 살아온 빌리 홀리데이는 사망 이전까지 음악적 상실감이 컸다. 12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남긴 빌리 홀리데이의 <Lady In Satin>(1958)과 <Last Recording>(1959)는 체념의 정서 가득한 생애 마지막 음반이자 명작으로 남겨졌다.
1932년 클럽 코반스에서 노래하던 빌리 홀리데이는 프로듀서 존 해먼드에게 발탁되어 18세의 나이에 베니 굿맨과 함께 ‘Your Mother's Son-In-Law’와 ‘Riffin' Scotch’를 녹음하며 레코딩 데뷔했다. 1935년 듀크 엘링턴의 뮤지컬 영화 <Symphony In Black: A Rhapsody Of Negro Life>에 출연한 빌리 홀리데이는 극 중 ‘Saddest Tale’을 불렀다. 빌리 홀리데이는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콜롬비아와 데카와 같은 레이블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1940년대 후반 그는 레이블과의 법적 문제와 약물 남용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빌리 홀리데이는 사후에 4개의 그래미상을 수상했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동안 그의 삶에 대한 여러 영화가 공개되었고, 2021년에 <The United States vs. Billie Holiday>가 개봉되었다.
빌리 홀리데이를 상징하는 곡 중에는 ‘Strange Fruit’가 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가창한 이 곡은 루이스 앨런의 시에 노래를 붙여져 완성되었다. 이 곡을 통해 빌리 홀리데이는 1944년 ‘에스콰이어 재즈보컬상’을 수상했고, 작가 릴리언 스미스에 의해 발표된 소설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었다.